커버이미지

[숨은역사 2cm] 길고양이 선비 앞 지나가면 과거시험 합격했다

등록일2017.03.30 08:21 조회수709

(서울=연합뉴스) 황대일 기자 = 길고양이들이 수난을 겪고 있다.

주인에게 버림받거나 길에서 살해되는 등 고통을 겪는다.

전국 길고양이는 100만 마리로 추정된다. 가정집을 떠난 길고양이는 온갖 학대를 받는다.

쥐약 살포나 아파트 지하실 폐쇄, 화살 막대 찌르기 등으로 고통받는다.

독극물로 떼죽음을 당하거나 흉기에 잔인하게 맞아 죽기도 한다.

끓는 물에 산채로 넣어 건강원에 넘겨지기도 한다.

길고양이 죽이는 방법을 알려주는 글이 인터넷에 공공연하게 오른다.

고양이 중성화나 급식소 개설 등이 해법으로 거론되지만 미봉책이다.

지금 천덕꾸러기가 된 고양이는 조선시대 유생이 가장 반기는 동물이었다.

과거시험 합격을 예지해준다는 믿음 때문이다.

합격은 오늘날 로또 당첨을 능가하는 경사다.

과거시험은 소과와 대과로 나뉜다.

대과 합격증은 출세의 보증수표였다. 소과 합격에 그치면 하급 관료가 된다.

전국 대과 합격생 33명은 등수별로 종6품~정9품 품계와 관직을 받는다.

수석과 꼴찌가 동일 직급으로 출발하는 요즘 공무원시험과 다르다.

나이와 학력, 응시 횟수 제한이 없어 경쟁률은 수천 대 일을 기록했다.

머리 싸매고 10여 년간 꼬박 공부해도 대다수가 낙방하는 이유다.

최종 합격자는 바로 팔자가 달라진다.

왕이 합격증과 술, 과일, 어사화 등을 직접 하사하고서 잔치를 베푼다.

한양 도심에서 사흘간 축하 퍼레이드도 열린다.

춤추는 아이와 악대·광대가 흥을 돋우면 어사화를 쓴 합격자들이 말을 타고 뒤따른다.

지방 출신 합격자는 귀향길이 요란하다.

연예인들이 동행하며 장구와 북, 해금 등 다양한 악기를 연주한다.

음악에 맞춰 곳곳에서 춤판이 벌어진다.

고향에 도착하면 수령과 주민들이 잔치를 성대하게 열어준다.

과거 급제를 고을 전체 영광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합격은 인생 역전을 의미하므로 죽을 때까지 도전하는 사례가 적잖다.

서울 경희궁에서 열린 23회 조선시대 과거제 재현행사.
서울 경희궁에서 열린 23회 조선시대 과거제 재현행사.

조선 고종 당시 정순교는 85세에 합격했다.

경쟁이 워낙 치열한 탓에 실력 못지않게 운도 당락에 영향을 미친다.

시험을 앞두고 무속인 도움을 받거나 이름을 바꾸는 선비가 급증하는 이유다.

수험생은 앞으로 지나가는 고양이를 보면 로또 당첨과 비슷한 흥분을 느낀다.

야사 등을 수록한 어우야담에 그런 사례가 나온다.

신숙이라는 선비가 고양이를 보고서 1, 2차 시험에 급제했다고 한다.

신숙은 최종 3차 시험을 하루 앞두고 온종일 헤맨 끝에 고양이를 찾아 부채를 휘둘러 앞을 지나가도록 했다.

날 듯이 기뻐하며 귀가한 그는 다음 날 시험에서 당당히 합격했다.

고양이 덕분에 지방 관리가 목숨을 건진 사례도 있다.

노비 출신 연산군 애첩의 아버지를 전남 나주 관리인 박상이 곤장으로 때려죽이는 사건이 생겼다.

연산군 위세를 등에 업고 온갖 횡포를 부리다 임자를 제대로 만난 것이다.

당시 박상은 청렴하고 강직하기로 유명했다.

이 문제로 박상에게 사형 명령이 내려졌으나 들고양이 덕에 무사할 수 있었다.

큰길에서 바짓가랑이를 물고 늘어지는 들고양이를 따라갔다가 때마침 지나가던 사형 집행관을 피했기 때문이다.

얼마 후 연산군이 권좌에서 쫓겨난 덕에 사형 명령은 무효가 됐다.

박상은 목숨을 구해준 고양이의 은혜에 보답하려고 해마다 제사를 올렸다는 이야기가 지금까지 전해진다.

과거 합격을 알려주고 선비를 구한 이런 전설이 널리 퍼져 길고양이 보호에 보탬이 되는 날을 기대해본다.

hadi@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7/03/22 09:00 송고

# 현재 인기 토픽

플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