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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다다미방 같은 구성…日 범죄 스릴러 '분노'

등록일2017.04.04 14:59 조회수3126
상업성·작품성 두 마리 토끼 다 잡을까 

(서울=연합뉴스) 정주원 기자 = 재일교포 이상일 감독의 범죄 스릴러 영화 '분노'는 무려 세 개나 되는 에피소드를 142분 동안 교차시키며 전개해 나갑니다.

영화를 보면서 초반에는 불안했습니다. 자칫 열 명가량이나 되는 주·조연 배우들의 극 중 이름조차 다 파악하지 못하고 극장을 나설지 모른다는 우려였습니다.

영화 '분노' [미디어캐슬 제공]

영화는 도쿄에서 평범한 부부가 집에서 무참히 살해된 채 발견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피로 쓰인 '분노'라는 글자만이 현장에 남은 유일한 단서입니다. 1년 후, 세 남성 타시로, 나오토, 타나카를 중심으로 서로 다른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이들은 살인사건 용의자의 몽타주와 똑 닮았다는 것 외에는 연결고리가 전무합니다. 셋은 도쿄, 치바, 오키나와라는 다른 지방에 살면서 러닝타임 내내 옷깃조차 스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을 사랑하게 되는 주변 인물들은 불신과 믿음 사이에서 갈등하고, 그로부터 불길처럼 번져가는 감정들에 분노하고 번민합니다. 이러한 심리적 대립구조는 전혀 다른 세 쌍의 에피소드를 마치 하나의 장소에서 벌어지는 일처럼 연결합니다.

영화 '분노' [미디어캐슬 제공]

이러한 복층적 구성 방식은 단서를 찾아 쫓고 쫓기는 기존의 범죄 스릴러의 전통적인 구조와 확연히 구분됩니다. 감독의 말대로, 그간 일본 범죄 미스터리에서는 전례가 없는 구조입니다. 값비싼 배우들을 데리고 이렇듯 큰 모험을 한 이상일 감독의 패기가 놀랍습니다.

영화 '분노' [미디어캐슬 제공]

이 작품은 일본 인기작가 요시다 슈이치의 신문 연재 미스터리 소설 '분노'가 원작입니다. 소설보다 많은 제약이 따르는 영화로 각색하려면 상당히 과감한 '덧셈 뺄셈'이 불가피했을 겁니다.

이 감독의 전작 '악인'의 원작도 요시다의 소설이지만, 당시 요시다는 처음부터 영화화를 염두에 두고 소설을 집필했기 때문에 흔쾌히 각본 제의도 수락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분노'의 경우는 워낙 인물이 많고 구성이 복잡한 탓에 누가 각본을 쓸 것인가를 두고 요시다와 이 감독이 실랑이한 끝에 결국 이 감독이 맡게 됐다고 합니다.

영화 '분노' [미디어캐슬 제공]

아마도 요시다가 각본을 썼다면 살인사건을 추적하는 형사들의 관점에서 스토리를 이끌어나가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그러나 이 감독은 용의자에게 정을 주고 관계를 형성해가는 주변 사람들에 앵글을 맞추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 감독의 작품에는 인간 내면의 대립구조가 항상 등장하는데, '분노'의 경우는 '믿음과 불신'의 갈등이 점차 극대화되면서 영화가 클라이맥스로 치닫게 됩니다. 믿는 사람은 배신당했을 때 분노가 일고, 불신하는 사람은 상대에게 분노를 일으키게 되는 것이지요.

영화 '분노' [미디어캐슬 제공]

이 감독의 모험은 상업성과 작품성 양면에서 성공에 가깝다고 생각됩니다. 극장을 나서면서 '구성을 차곡차곡 참 잘 쌓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탄탄한 구성 덕에 여러 개의 에피소드가 복잡하게 교차하는 속에서도 긴장감을 유지하고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영화 속 흩어져 있는 세 가지의 에피소드를 각각 추출해내도 훌륭한 세 편의 단편영화가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치 문을 여닫는 대로 방의 크기가 늘었다 줄었다 하는 일본 전통 다다미방 같기도 합니다.

영화 '분노' [미디어캐슬 제공]

그토록 촘촘한 구성으로 터를 잘 닦아놓은 덕분에 츠마부키 사토시·마츠야마 켄이치·모리야마 미라이·아야노 고 등 네 명의 주연급 젊은 남우들이 조화를 깨지 않으면서 입체적인 인물들을 연기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미야자키 아오이·히로세 스즈 등 청순 스타 여배우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화 '분노' [미디어캐슬 제공]

우리나라 극장가에도 범죄 스릴러의 인기가 여전히 강세를 보입니다만, 구성보다는 새로운 소재와 스타 캐스팅에 중점을 둔 작품들이 많습니다. 영화의 특성상 새로운 구성에 도전하는 것은 리스크가 크기 때문이겠죠. 이상일 감독의 '분노'가 구성의 혁신에 기폭제가 되기를 기대해봅니다. 30일 개봉.

영화 '분노' 포스터 [미디어캐슬 제공]

jwc@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7/03/27 12:55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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