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 드라마 도깨비]
그는 도깨비 김 신과 퍽 닮았다. 서른의 외모지만 나이는 이미 환갑에, 얄궂은 운명에 의해 다른 차원을 떠돌아야 했으며, 떠나보낸 사랑을 기다리고 있다. 한시도 인간애를 놓은 적 없으나, 인간 세상에 함부로 관여하지 않는 절대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김 신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는 서대문에 있는 밥집을 운영한다는 것이다. 『도깨비』 심야식당 버전인 『밥 먹고 가라』 리뷰, 지금 시작한다.
30년 전 지구에 몬스터들이 출몰하기 시작하자, 이에 대한 반작용이라는 듯 소수의 사람들(이하 각성자)이 몬스터와 대적할 수 있는 이능력을 각성했다. 그러나 차원의 틈을 타고 넘어오는 몬스터 군단은 인간에게 너무나 큰 시련이었고, 문명은 파괴됐다.
한국에서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라곤 오직 다섯 도시만이 남았다. 그나마 보존된 터전들도 10년 전의 몬스터 대침공으로 전멸할 뻔했으나, 지금 밥집에서 라면을 끓이는 우리의 주인공 강철호 덕분에 지켜질 수 있었던 것이다.
[출처 = 드라마 도깨비]
밥집 주인 강철호, 그를 전격 해부해보자. 30년 전 철호는 갑자기 노량진에서 이세계인 에스판 대륙으로 소환돼, 마왕을 무찌르라는 미션을 받았다. 20년에 걸친 미션 수행 끝에 철호는 6개 클래스의 마스터가 됐다.
철호가 마스터한 클래스에는 비행이 자유자재로 가능한 바람의 마법,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 절대 결계 등이 있다. 10년 전에 마왕을 무찔러 몬스터 대 침공을 막은 철호는, 얼마 전 우연히 찾아낸 차원의 틈을 통해 지구로 귀환했다.
3클래스 마스터가 한계인 지구의 각성자들 사이에서 철호가 활약한다면 분명 영웅 대접을 받거나, 아예 지배자가 될 수도 있으련만. 철호는 이제는 평범한 인생을 살고 싶다며 밥집을 차린다. 그러나 서울을 수호하는 각성자들이 손님으로 오고, 청년 드래곤과 아기 드래곤이 함께 사는 밥집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밥 먹고 가라』는 사연을 요리하는 먹방 판타지 소설이다. 영화 『어벤져스』의 히어로들처럼 막중한 책임감을 짊어진 수호자들의 고뇌, 자식에게 자랑스러운 아빠가 되고 싶은 공사장 막일꾼의 슬픔 등이 철호의 요리와 진심 어린 조언을 통해 해소된다. 제일 필자의 마음을 어루만진 것은, 철호가 노인이 된 친구에게 추억의 떡볶이를 만들어주는 장면이었다.
철호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지금이요?”
“예.”
그는 남은 떡볶이를 국물까지 싹 먹은 그릇 위에, 수저와 포크를 내려놓았다.
“지금도 같아요. 나는 모두를 지켜요. 그리고, 모두에게 웃음을 줄 겁니다.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거예요.”
그리고 씩 웃었다.
“나는 수호자이자, 마술사이며, 아직도 소년의 꿈을 꾸니까요.”
-그래서 모두를 행복하게 할 거야!
아주 오랜 옛날의 목소리가 오버랩 되는 것 같았다. 철호는 환하게 웃었다.
마술사가 꿈이었던 친구는 강북을 지키는 수호자 ‘강북의 마술사’가 되었다. 비록 친구는 철호를 알아보지 못했지만, 두 사람은 그때 그 시절로 추억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먹방 콘텐츠에서 필수인 요리하는 장면 묘사가 일품인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작가는 어쩜 그리 요리가 만들어지는 소리를 잘 쓰는지 모르겠다. 돼지고기 튀기는 소리, 수박 써는 소리, 소금 뿌리는 소리…
아참, 참고로 몬스터들 때문에 동물의 씨가 말라서, 대부분의 식재료는 몬스터다. 그래서 철호가 몬스터를 죽이는 것은 대부분 식재료를 구하기 위해서다. 참 웃기는 주인장이다.
뽁뽁이 신발을 좋아하는 아기 드래곤
『밥 먹고 가라』에는 감동과 더불어 웃음도 있다. 소설에서 가장 사랑받는 캐릭터인 아기 드래곤 ‘귤’은 독자의 미소를 책임진다. 철호를 아빠처럼 따르는 귤은 변기를 우물로 생각해서 오빠 드래곤 ‘칸’에게 변기물을 떠주는가 하면, 철호가 초콜릿이나 젤리를 주면 감격해서 넙죽 큰절을 올린다. 읽다보면 그 사랑스러움에 반해서, 귤의 웃음소리인 “뀰뀰뀰”에 어느새 중독된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한편, 철호에게 조련을 받으며 개과천선하는 캐릭터들의 모습 역시 개그 포인트다. 마왕의 수하였던 미노타우르스와 뱀파이어 여왕은 철호의 훈육을 받고, 프로 농사꾼이 된다. 인간을 하찮게 봤던 몬스터들이 제대로 각 잡고 철호에게 인사하는 모습에선 “낄낄”과 같은 웃음 소리가 육성으로 터진다. 뿐만인가, 잔잔한 힐링과 더불어 이따금씩 엄습해오는 긴장감은 소설의 전개를 맛있게 요리한다.
정체모를 기계 몬스터, 살상을 즐겨하는 마족, 그리고 엘프와 드래곤 등 다양한 종족들이 지구로 집결하고 있다. 에스판 대륙, 마계 등 여러 차원의 틈이 열렸기 때문. 철호는 과거 자신을 이세계로 보내고, 현재 차원의 틈을 연 존재의 정체가 궁금하다. 언젠가는 철호도 밥집을 접고 전면에 나서서 활약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독자들은 왠지 이 같은 전개를 더 바랄지도.
저승사자와 티격태격하다가도 적재적소에 능력을 발휘하던 도깨비 김 신이 그립다면, 낭만식객 강철호의 일상을 들여다보자. 그는, 귀여운 장난꾸러기 아기 드래곤을 돌보는 아빠이자, 위험에 처한 능력자들을 지켜주는 히어로이며, 미슐랭 스타가 아깝지 않은 음식을 만드는 낭만식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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