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이미지

도해 비경과 동행하는 화태 갯가길

등록일2017.05.10 09:35 조회수1174
여수 갯가길 제5코스 13.7㎞ 구간 '어디든 다 그림' 

(여수=연합뉴스) 이창호 기자 = 지난 4월 중순 여수의 돌산도를 찾은 건 금오도 비렁길을 걷기 위해서다. 여수 앞바다에는 300여 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 보석처럼 흩뿌려져 있지만, 그중 뭍사람들의 발걸음이 잦은 섬이 금오도이고, 함구미에서 장지마을까지 이어진 18.5㎞의 비렁길은 숲과 바다, 해안절벽 등의 비경을 만끽할 수 있어 최고의 섬 걷기길로 손꼽힌다. 비렁은 벼랑의 여수 사투리다.

한반도 형상을 닮은 화태도는 크고 작은 섬으로 둘러싸여 있어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처럼 아름답다. [사진/ 전수영 기자]

봉황산 자연휴양림에서 하룻밤 머물고 이튿날 이른 아침 5분 거리에 있는 신기항으로 자동차를 몰았다. 설렘 탓이었을까. 금오도비렁길여객터미널에 도착했을 때 닫힌 문에는 풍랑주의보로 금일 운행을 중단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다른 취재 일정으로 인해 하루 더 머물 수 없는 난감한 상황에 봉착한 순간 여수 갯가길이 떠올랐다.

비영리 시민단체인 사단법인 '여수갯가'가 조성한 여수 갯가길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리아스식 해안인 여수반도 420㎞ 해안선을 연결하는 프로젝트로 2013년 10월 제1코스를 개통한 이후 2개 정식 코스와 별도의 '여수밤바다 코스'를 열어 남해안을 대표하는 힐링길로 자리매김했다. 총 길이 55㎞로 해변의 오솔길, 울창한 숲길, 갯바위길 등 다양한 길이 해안을 따라 이어진다.

여수 갯가길 가운데 3코스(방죽포해수욕장~임포ㆍ향일암)가 호기심을 자극했다. 급히 여수갯가에 도움을 청했고, 김경호 이사장은 흔쾌히 안내를 승낙했다. 돌산도 내에 위치한 전남해양수산과학관 주차장에서 만난 김 이사장은 "5코스인 화태 갯가길이 4월 29일 개장한다"면서 취재를 권한다. 김 이사장은 "현재 90% 정도 조성된 화태 갯가길은 비렁과 소나무 숲길을 걷고 호젓한 어촌 마을을 통과하는데 어디든 다 그림"이라면서 총 13.7㎞로 완주 시간은 4시간 30분가량 소요된다고 소개한다.

화태 갯가길은 여수시 남면 화태리 치끝에서 출발해 마족, 월전, 독정항, 묘두, 꽃머리산, 뻘금을 거쳐 화태대교를 건너 돌산 예교에서 끝나는 총 5개 구간으로 이루어진 코스다. 이회형 여수갯가 상임이사도 금오도 비렁길보다 "훨씬 더 좋다"면서 이야기를 거든다.

한반도 형상을 닮은 화태도는 1620년 처음 사람이 살기 시작한 이후 돌산읍 신기리와 화태도 간 연도교인 화태대교가 2015년 12월 완공되면서 돌산도와 연결됐다. 왕복 2차로인 화태대교는 총 길이 1천345m의 사장교로, 주탑 높이는 130m다. 화태는 마을 뒤쪽의 노적산이라는 곳이 군량미 적재지역이어서 벼이삭 수(穗) 자가 들어간 수태(穗太)섬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결국 벼 화(禾) 자를 쓴 화태(禾太)로 굳어졌다.

갯가길은 따개비, 고동, 파래 등 갯것 하러 다니던 길을 복원한 것이다.

◇ 민간 주도 걷기길, 섬 지역 관광 자원화 견인

전남해양수산과학관에서 17번 국도를 타고 가다 화태대교를 지나 좌회전해 시멘트길을 따라가면 화태도 남쪽에 위치한 월전마을에 닿는다. 1구간(치끝~월전, 3.2km, 1시간 10분)의 끝 지점이자 2구간(월전~독정항, 1.7km, 30분) 시작점인 월전마을은 해안가 안쪽으로 오목하게 들어가 있어서 그런지 아늑하고 정감 가는 고향마을처럼 느껴진다.

문여방파제와 월전등대, 부두에 정박 중인 어선들이 옥빛바다에 떠 있는 크고 작은 섬과 한데 어우러져 빼어난 풍경이 된다. 문여방파제 끝에서 낚시꾼들이 농어와 숭어를 잡고 있었다. 여름철에는 참돔, 가을과 겨울에는 감성돔의 시원한 입질도 자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문여방파제에서 치끝으로 발길을 옮겼다. 왼쪽엔 숲, 오른쪽엔 바다를 두고 오솔길을 쉬엄쉬엄 따라 걷다 보면 바다는 해조음을 통해 자기 존재를 알려오고, 번잡한 도시를 벗어난 걷기꾼은 한 굽이를 돌 때마다 느림 속에 젖어든다. 길섶의 나무와 풀들은 연초록을 자랑하고, 용트림 소나무는 세월의 무게를 느끼게 한다. 얼굴 위로 부서지는 햇살을 맞으며 걷다 보면 숲길로 접어들고, 숲길이 지루할 만하면 과거 해안초소로 쓰였던 참호가 눈에 띈다.

과거 해안초소로 쓰였던 참호 내부

해안절벽 위에 세워진 참호 위에 서면 소나무 군락이 돋보이는 대횡간도, 섬의 생김새가 나팔과 같이 생긴 나발도, 콩과 같이 생긴 대두라도ㆍ소두라도, 금빛의 거북이를 닮았다는 금오도 등 다도해의 주옥같은 섬들이 눈 앞에 펼쳐진다. 다도해 풍광에 가슴이 뻥 뚫리고 ‘아름답다!’는 감탄사가 절로 터져 나온다.

1구간의 3분 1 정도를 걷다가 다시 월전마을로 돌아와 독정항으로 향했다. 걷는 내내 푸른 바다가 동행하는데 고저의 차이가 크지 않고 험한 길이 없어 걷기 편하다. 인공구조물이 거의 없고 오르막이 이어지는 곳에는 삼을 엮어 바닥을 깔았고 위험한 곳은 밧줄을 걸쳐 놓았다.

풍랑주의보가 내려졌는데도 월호도와 개도, 자봉도와 제도, 백야도 등이 천연 방파제 역할을 해서 그런지 바다는 평온하다. 남쪽에서 불어오는 태풍과 풍랑은 크고 작은 섬에 부딪혀 한풀 꺾여 화태도 앞바다는 잔잔한 내해가 된다. 바다에 떠 있는 수많은 가두리양식장은 마치 수상가옥처럼 다가온다. 다도해 해상국립공원 내 화태도는 여수에서 가장 먼저 가두리양식을 시작했고, 주민의 80%는 3월부터 12월까지 우럭 농어 참돔을 키우며 수상가옥에서 생활한다.

화태도 앞바다에 떠 있는 가두리양식장과 수상가옥

주황색 리본을 따라 느릿느릿 걸었다. 길섶에는 벚꽃과 유채꽃이 망울을 터트려 걷기꾼의 벗이 돼주었다. 독정항에서 신발끈을 다시 조여 매고 물빛의 스펙트럼이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아름다운 다도해와 호흡하며 걷다 보면 묘두마을 뒤편에 다다른다. 가파른 언덕에 서면 지형이 고양이 머리처럼 생긴 마을과 가두리양식장이 보이고 그 끝으로 바다가 펼쳐진다. 썰물 때 마을과 등대를 잇는 바닷길이 열리는 마을 풍경은 더없이 평온하다. 지그재그로 연결한 골목을 지나면 지금까지 걸어온 길보다 오르막내리막이 많다. 절벽 위 숲길과 갯가를 걷다 보면 숲의 상쾌함과 바다의 비릿함이 뒤섞인다.

멀리 백야도와 고흥반도의 외나로도가 보이고 가까이는 송도(松島) 전경이 펼쳐진다. 송도는 예전에 소나무가 무성한 섬이었으나 지금은 개간한 밭이 되어 무성한 소나무는 찾아볼 수 없다. 1890년대 이전에는 해적들의 잦은 출몰로 인해 사람들이 거주할 수 없었으나, 돌산읍 군내리에 거주하던 주민들이 수시로 이곳을 드나들며 보리와 수수 등을 재배하였다고 한다. 화태 갯가길은 섬을 한 바퀴 돌아서 그 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코스다. 꽃머리산 전망대에 오르면 돌산, 남면, 화정면, 화양면 등 사방을 시원하게 조망할 수 있으며, 발아래로 돌산도와 화태도를 한 몸으로 묶은 화태대교를 볼 수 있다.

인공적인 손질을 최대한 자제하고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살릴 '화태 갯가길'

김경호 이사장은 "언젠가 이 길을 찾는 사람이 없을 때 다시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조성하는 여수 갯가길은 대부분 자원봉사, 재능기부, 후원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며 "화태 갯가길은 그동안 소외됐던 섬 지역의 관광 자원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풍랑주의보로 기대 없이 찾았던 화태 갯가길에서 자연과 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때로 사람 사는 일이 돌아가는 길, 느리게 가는 길, 우연으로 이어진 길이 더 아름다울 수 있음을 느끼고 난 뒤 화태대교를 다시 건넜다. 햇살이 부서지는 바다는 참 아름다웠고, 화태도는 세상살이 힘들 때 다시 오라고 손짓하는 것만 같았다.

전남 여수 돌산과 화태도를 잇는 화태대교

◇ 산과 바다 어우러진 봉황산 자연휴양림

여수에서 돌산대교나 거북선대교를 지나 국도 17번을 타고 가다 화태도와 갈림길인 신북교차로에서 신기항으로 가다가 좌회전해 대북로를 따라 올라가면 자연휴양림 관리사무소에 닿는다. 가파른 오르막길 왼편으로는 산림문화휴양관과 숲속의 집인 진달래(2인실)·편백나무(4인실)·후박나무(6인실)·동백나무(8인실)가 봉황산 자락에 들어서 있고, 오른편으로 자생식물원과 제2야영장, 카라반, 제1야영장이 조성돼 있다. 산림문화휴양관과 숲속의 집에서뿐만 아니라 야영장과 카라반에서도 다도해 풍광을 마음껏 누리면서 호젓한 하룻밤을 보낼 수 있다. 특히 숲속의 집은 친환경 소재인 편백, 후박, 동백으로 시공해 심신 안정과 스트레스 완화에 효과적이고, 야외 테라스에서 다도해의 노을을 만끽하며 분위기를 낼 수 있다.

모든 객실에서 다도해의 수려한 풍광을 조망할 수 있는 봉황산 자연휴양림

제1야영장은 계단식으로 돼 있는데 야영덱 14면과 취사장, 화장실, 샤워실 등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 특히 각 야영덱 내 전기를 공급함으로써 가족 단위 이용객들이 편리하게 시설을 이용하도록 했다. 취사장과 주차장에 가깝고, 가장 높은 곳에 있는 1, 2번 덱이 이용률이 높다. 이용객들의 욕구충족을 위해 카라반 2대가 숲 속에 둘러싸인 형태로 배치돼 있다. 카라반은 가족 단위 캠핑이 가능한 4인용으로 더블 침대 1개, 2층 침대 1개, 화장실, 싱크대, 냉장고, TV, 에어컨, 소파, 테이블, 전기 레인지, 주방용품, 침구류 등을 갖췄다.

관리실과 제2야영장 옆에는 수생·약용·음지식물원 등 자색식물원이 조성돼 있어 생태교육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수생식물원의 덱에서는 수생식물을 관찰할 수 있다.

자연휴양림 내에는 ‘편백 숲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숲길에 들어서면 원시림으로 느껴질 만큼 편백과 산벚나무, 참나무, 고로쇠나무들이 빽빽하다. 깊은 숲을 걷다 보면 이내 마음이 평온해진다. 피톤치드 때문인지 몸과 마음이 뻥 뚫린 듯 시원스럽다.

'숲속의 집' 내부 모습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7년 5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changho@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7/05/10 08:01 송고

# 현재 인기 토픽

플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