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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터널 허성태 "사람 냄새 나는 배우 되고 싶어"

등록일2017.05.25 08:47 조회수2676

(서울=연합뉴스) 손미정 기자 = "직장인으로 치면 주 5회 일할 수 있게 된 거죠. 지금이 너무 행복해요."

서른다섯에 대기업을 나와 배우가 됐다. 운명같이 참가하게 된 한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서였다. 현실 대신 꿈을 택한 그에겐 곧장 '늦깎이 신인'이라는 수식이 따라붙었다. 그 후 60여 편의 단편영화에 출연했고 60여 편의 드라마에 단역으로 나왔다. 무명의 신인이 견뎌야 하는 서러움은 '배우의 숙명'이라 생각하며 묵묵히 삼켰다. 그렇게 허성태(41)는 늦은 나이에 들어선 배우라는 길을 뚜벅뚜벅 걸어왔다.

지난해 허성태는 영화 '밀정'에서 하시모토를 돕는 정보원 하일수 역을 맡으며 대중에게 얼굴을 알렸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프로리그'에 첫발을 내디딘 셈이다. 그리고 올해 OCN 드라마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터널'에서 여성연쇄살인범 정호영을 열연했다. 이제 그는 프로리그 안에서도 꾸준히 일이 들어오는 배우가 됐다.

"사이코패스 역할은 남자배우들의 로망인데 제게 너무 빨리 오지 않았나…. 제게 정호영은 선물 같은 캐릭터에요." 배우 허성태를 연합뉴스 공감스튜디오에서 만났다.

OCN 터널에서 연쇄살인범 정호영을 연기한 배우 허성태

처음 정호영 역을 받았을 때 '정말 하고 싶다'는 욕심이 강렬하게 들었다. 그래서 더 철저하게 준비했다. 허성태가 연기한 정호영 속에는 '모든 캐릭터에 휴머니즘이 느껴졌으면 좋겠다'는 감독의 바람을 캐릭터에 담아내기 위한 치열한 고민이 녹아있다.

"감독님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고민을 했어요. 첫째는 그냥 나쁜 사람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둘째는 시청자들이 봤을 때 가슴 뻥 뚫림이 있어야 하는데 나는 거기서 무슨 역할을 해야 하나. 그 두 개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고민했었던 것 같아요."

허성태는 연쇄살인범이지만, 어머니에게 배척당했던 아픈 상처를 가진 정호영을 훌륭히 소화해냈다. '연기 참 잘한다'는 수두룩한 칭찬들이 이를 말해준다. 허성태는 "(칭찬이) 너무 감사하다"며 "준비한 것을 그만큼 어느 정도 보여드렸다는 안도감이 좀 들었다. 목적을 달성했으니 보람 있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OCN 터널에서 허성태가 연기한 여성연쇄살인범 정호영 [출처=OCN 터널]

터널이 끝나고 허성태는 오는 31일부터 방영되는 KBS 드라마 '7일의 왕비'에서 '온갖 악행'을 일삼는 무뢰배 수장으로 출연한다. '온갖 악행'이라는 수식에 한참을 웃고 나니 '같은 악역이지만 분명히 다르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그는 "터널하고 비교하자면 악행을 주인공에게 하는 건 똑같다"며 "정호영은 드라마가 있는 악행이었다면 7일의 왕비에서는 투철한 직업 정신을 갖고 시키는 대로 악행을 저지르는 역할이다"라고 말했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계속 나쁜 역할을 맡고 있지만, 정작 '악역'에 거부감은 없다. 주어진 모든 역할이 "지금이 아니면 하지 못할 역할"이기 때문이다. 그 안에는 악역 외의 모습도 보여줄 수 있다는 자신감도 녹아있다. 실제 올해 개봉 예정인 네 편의 영화, '꾼', '범죄도시', '남한산성', '부라더'에서 허성태는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했다. 그 덕분에 "보험을 들어놓은 느낌"이라고.

배우 허성태

"올해 개봉하는 영화에서는 악역도 있고 되게 코믹한 연기도 있고, 제 연령대보다 높은 연령을 연기하는 작품도 있어요. 실존 인물을 연기하기도 했고 외국어나 사투리로 연기도 했고요. 저는 다양한 모습을 분명히 보여드릴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조금 덜 걱정하는 거죠."

무명배우로서의 시간을 '터널'에 비유하며, 혹자는 '허성태가 이제 긴 터널을 지났다'고 평했다. 하지만 그는 "이제 터널에 들어가기 시작한 것 같다"고 답했다. 자신이 앞으로 더 짊어져야 할 배우로서의 부담감에 대한 이야기다. "앞으로 연기하면서 겪었던 어려움보다 더 큰 어려움이 있을 거로 생각해요. 지금보다 더 큰 역할을 맡게 되면 마찬가지로 더 큰 부담이 있을 거거든요. 저는 터널을 지났기보다는 이제 진입을 한 것 같아요."

허성태는 자신이 지나야 할 터널의 끝에 '주인공 역할'이 기다리길 바랐다. 주연배우로 성공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극을 이끌어가는 주연이 갖는 부담과 고민을 함께 느껴보고 싶다는 작은 소망의 일환이다. "현장에서 주연배우들이 고뇌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 주연배우가 되고 싶어' 이런 게 아니라 그 부류에 섞여서 그런 고민을 같이 나누고 싶더라고요. 극을 내 호흡으로 끌어나간다는 게 얼마나 큰 부담이면서 행복일까요. 저는 감히 상상도 못 하겠어요."

배우 허성태

어떤 배우가 되고 싶으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모두 '공감'으로 수렴했다. 목표도 '사람 냄새가 나는 배우'다. 비슷한 냄새가 나야 공감이 간다는 생각에서다. "어렵게 이야기하면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배우 그런 거죠. 제일 사람다운 게 제일 배우다운 배우인 것 같아요. 배역 안에서 마음이 보이니까 좀 보듬어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그런 배우가 되고 싶어요."

지금, 허성태는 행복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일을 할 수 있어서. "올해 제일 행복해요. 매니저들과 식사를 할 자리가 있었는데 제게 조바심 갖지 말고 잘 될 거란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제가 말했어요. 나는 괜찮다고, 나는 지금 너무 행복하다고. 오히려 (매니저들이) 조급하지 말라고. 나 지금 너무 행복하니까, 진짜로." (촬영 : 전석우 기자)

balme@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7/05/24 18:36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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