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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설경구의 부활 '살인자의 기억법'

등록일2017.08.31 17:18 조회수1076

(서울=연합뉴스) 정주원 기자 = 원신연 감독의 신작 '살인자의 기억법'은 불치병에 걸린 연쇄살인범이 딸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분투하는 범죄 스릴러입니다. 원작 소설의 유명세를 차치하고라도, 간만에 '설경구의 영화'라고 할만한 작품을 만났기 때문에 더욱 반가운 작품입니다.

'살인자의 기억법'[쇼박스 제공]

'병수'(설경구)는 불우한 성장기로 인한 트라우마로 연쇄살인마가 됩니다. 범행을 '청소'라고 부르며 자신의 도덕관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찾아가 살해합니다. 폭설이 내린 어느 날, 병수는 차 사고를 당해 후유증으로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고 평범한 수의사의 삶을 살아갑니다. 최근의 기억부터 서서히 잃어가며 죽음을 준비하는 와중에도 유일한 혈육인 딸 '은희'의 거취를 염려합니다.

어느 날, 병수는 눈길에 접촉사고를 냅니다. 상대 차주인 청년 '태주'(김남길)의 눈을 보고 자신과 같은 연쇄살인마라고 직감하고 경찰에 신고합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딸이 태주를 남자친구라며 소개하자 경악을 금치 못합니다.

'살인자의 기억법'[쇼박스 제공]

사실 알츠하이머에 걸린 연쇄살인범이라는 소재 자체는 처음이 아닙니다. 2010년에 방영된 미국 드라마 '크리미널 마인드'의 시즌6에서도 치매로 기억을 잃고 살인 습관만 남은 연쇄살인마 노인이 등장합니다. 노인은 아들도 살인마로 키워 함께 무작위 연쇄살인을 계속합니다. 그러나 TV 시리즈의 특성상 수사관의 관점에서 사건이 조명되고, 드라마적 요소보다는 사건의 잔혹성에 주목하는 드라이한 전개를 보여줍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살인자의 기억법은 인물 간의 심리전과 가족애 등 드라마에 중점을 둔 범죄 스릴러입니다. '흔한 한국식 신파'라고 치부하기에는 상당히 매력적인 조합입니다. 범죄자인 병수의 관점에서 사건을 이끌어가고, 병수의 범행에 사회의 구조적인 폐해를 덧그려 관객의 동정을 끌어냅니다. 또 알츠하이머로 인해 벌어진 해프닝이나 시 쓰기 강좌에서 만난 유쾌한 동기들과의 케미도 웃음을 자아냅니다.

'살인자의 기억법'[쇼박스 제공]

설경구가 연기한 병수는 감정이 없는 연쇄살인마와 불치병 환자, 딸을 걱정하는 아버지, 부루퉁하지만 귀여운 '츤데레' 아저씨 등 다중적인 면모를 지닌 캐릭터입니다. 그의 수많은 필모그래피 중 이토록 다양한 모습을 지닌 캐릭터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흥미로운 도전입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병수가 터널 밖 설원을 홀로 헤매는 신입니다. 설경구의 대사 없는 연기에서 전작들에서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설경구가 보입니다. 어두운 터널은 병수의 인생을, 설원은 그의 무의식을 상징합니다. 무의식 속에서 그가 본 마지막 잔상에 작품의 메시지가 드러나 있는 것 같습니다.

'살인자의 기억법'[쇼박스 제공]

태주 역의 김남길 역시 서스펜스의 중심을 놓치지 않고 몰입감을 높였습니다. 자칫 범죄 스릴러의 뻔한 캐릭터가 될 수 있었는데, 어색함이 없이 설경구와 훌륭한 케미를 완성했습니다. 섬뜩함과 평범함을 넘나드는 연기가 자연스러워 태주가 진정 연쇄살인범인지 아니면 병수의 환상에 불과한지 반문하게 하기도 합니다. 원신연 감독의 희망대로 체중을 14㎏가량 불린 것이 자연스러움에 일조한 플러스알파였다고 생각됩니다.

'살인자의 기억법'[쇼박스 제공]

연기자로 커리어를 착실히 쌓아가고 있는 설현의 은희도 매력 넘치는 캐릭터입니다. 극 초반 아버지인 병수에게 녹음기를 선물하는 장면과 만두를 건네는 장면에서는 다소 어색한 연기를 보였습니다. 그러나 병수와 태주의 첫 만남 이후의 신부터 사랑스럽고 애틋한 딸의 면모를 자연스럽게 끌어냈습니다.

'살인자의 기억법'[쇼박스 제공]

한편, 객석을 나서면서도 유독 기억에 남는 연출 장면이 있습니다. 병수의 유년기 회상 장면 중 병수 아버지의 베개가 터지면서 베갯속이 쏟아지는 신입니다. 비극적이면서도 사건에 사실성을 더해준 것 같습니다.

전체적으로 김영하의 동명의 원작 소설을 접하지 않은 관객이라도 무리 없이 이해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검증된 스토리 이상으로 배우들의 연기가 돋보입니다. 118분의 러닝타임 내내 몰입이 깨지지 않으면서 대사가 캐릭터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것 같습니다. 작품성과 몰입도 양면에서 볼 때 올해 선보인 한국 범죄 스릴러 중 손꼽힐 만한 작품입니다. 9월 6일 개봉.

'살인자의 기억법'포스터 [쇼박스 제공]

jwc@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7/08/31 00:12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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