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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의 자취를 따라, 통영 한산도

등록일2019.03.05 09:13 조회수7007

 







한산도는 임진왜란 최대 해전인 한산대첩이 펼쳐진 곳이다.

 


또한 한산도는 경상, 전라, 충청 3도의 수군을 모두 다스리는 해상 방어 총사령부인 삼도수군통제영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 초대 통제사로 전라좌수사였던 이순신이 임명됐다. 한산도는 바로 이충무공의 섬이다.





한산대첩도







1592년 음력 7월 7일, 이순신 함대를 격멸하라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을 받은 왜군 수군장은 함대 73척와 함께 후발 함대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었다.


왜군들이 위치한 곳은 수로가 좁고 물살이 세며 암초가 많아 우리 판옥선이 기동하기에 불리했다. 조선 수군은 왜군들의 함대를 남쪽의 통영 앞바다로 유인하여 학익진 전법으로 그들을 에워싸고 집중포화를 퍼부었다.


조선 수군은 이날 왜선 59척을 부수고 왜장 2명과 왜의 수군 8천여 명을 수장시켰다. 한산대첩은 패색이 짙은 전황을 뒤바꾼 분수령이었다.








거북 등대 뒤로 보이는 한산대첩기념비  /  이충무공유적지의 출입문인 한산문







 지혜로 계책을 세우다 



한산도에 거의 다다르자 거북 모양 등대와 한산대첩기념비가 모습을 드러냈다. 여객선은 출발 25분 만에 한산도 여행의 출발점인 제승당 선착장에 도착했다.


여객선에서 내려 오른쪽으로 가면 제승당이 있는 이충무공유적지가 위치해 있다. 유적지의 출입문인 한산문에 들어서면 해안을 따라 난 길이 두 팔로 바다를 감싼 듯 부드러운 곡선을 그린다. 오른쪽으로 펼쳐진 바다는 호수처럼 잔잔하고 드넓다. 하늘에서 보면 전체적인 모습이 하트 모양이라고 한다.


제승당의 원래 이름은 운주당이었다. 운주는 '지혜로 계책을 세운다'는 뜻으로 부하들과 소통하며 밤낮으로 의논하고 계획을 세우는 충무공의 평소 모습이 담긴 이름이다. 운주당은 정유재란 때 원균이 지휘하는 조선 수군이 왜군에 패하며 소실됐다가 이후 통제사 조경이 고쳐 지으며 '제승당'이라 명명했다. 제승은 '승리를 만든다'는 뜻이다.


 



 


이순신 장군 관련 그림과 제승당 현판이 전시된 제승당 내부  /  한산도 이충무공유적지의 수루에서 바라본 풍경







 제승당에서 만나는 충무공 


 

제승당 안쪽 벽면에는 그림 5폭이 걸려 있다.


거북선이 최초 등장한 사천해전, 학익진을 펼친 한산대첩, 이충무공이 전사한 노량해전, 수루에서 기도드리는 이충무공, 한산도에서의 진중 생활 등을 묘사하고 있다. 명나라 신종황제가 내린 팔사품을 그린 병풍, 전투 때 사용한 지자총통과 현자총통도 놓여 있다. 또 통제사 김영수가 1786년에 썼다는 제승당 현판을 볼 수 있다.


제승당 오른편에는 왜적의 동태를 파악하기 위한 망루인 수루가 있다. 이충무공이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했다"던 그 수루다. 지금의 수루는 1976년 신축된 것으로 2014년 목조로 개축됐다. 수루 안에는 한글로 쓴 '한산도가' 편액이 걸려 있다.







활쏘기를 연습했던 한산정과 화살 과녁  /  이충무공유적지에 있는 유허비







 바다 건너 위치한 과녁 3개 


 

제승당 왼쪽에 있는 문으로 들어서면 이순신 장군과 병사들이 활쏘기 연습을 했다는 한산정이다. 한산정에 서면 바다 건너 비탈에 과녁 3개가 마련돼 있다. 과녁까지 거리는 약 150m로 활터와 과녁 사이에 바다가 있는 곳은 여기뿐이라고 한다. 이충무공이 이곳에 활터를 만든 것은 병사들이 조수에 따라 달라지는 목표물까지의 거리에 적응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한산정 출입문 왼쪽으로 나가면 이충무공의 영정을 모신 충무사가 있다. 영정 속에서 통제사 관복 차림의 이충무공은 근엄하면서도 온화한 표정을 짓고 있다. 사당 안에는 이순신 장군의 친필편지를 모은 서간첩과 송나라 역사를 읽고 쓴 독후감인 독송사에서 뽑은 내용을 담은 병풍이 있다.


홍살문과 삼간문 사이에는 통제사 조경과 이충무공의 후손으로 제198대 통제사를 지낸 이규석이 세운 유허비가 있고, 맞은편에는 '리충무공계시던제승당의터다'라 적힌 한글비가 서 있다.







문어포 뒤편 음달산 정상에 있는 한산대첩기념비







 섬 곳곳에 남겨진 전란의 기억


 

이충무공유적지를 방문했다면 이제 이순신 장군의 섬인 한산도를 돌아 볼 차례. 제승당 선착장에서 왼쪽으로 난 한산일주로를 따라가면 된다.


일주로를 따라 띄엄띄엄 자리한 마을들은 우리 수군의 승리를 위해 각기 주어진 임무를 수행한 병참 마을이었다. 군수용 소금을 구워 공급한 대고포, 숯과 연료를 공급한 장곡 마을, 꿀을 채취한 벌통골 등 각각의 임무에 맞게 붙은 마을 이름이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다음은 한산면사무소가 있는 진두. 임진왜란 당시 우리 수군이 진을 치고 경비초소를 두었던 곳이라 진두라 칭하였다. 진두 인근 야소는 이충무공이 대장간을 설치하고 병장기를 제조, 수리했던 곳이다. 우리 수군의 군복을 짓고 수선하던 피복창이 있던 남쪽 끝자락의 의암, 학익진 등 각종 진법을 훈련했던 서쪽 해안의 장작지 또한 방문해볼 만 하다.



글 임동근 · 사진 조보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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