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이미지

40년 독서모임의 결실은...그레이??

등록일2019.07.31 17:30 조회수2082



요즘 종편채널에서 1세대 아이돌 그룹이었던 핑클의 전 멤버가 캠핑을 떠나는 프로그램을 방영중이다. 비슷한 연령대인 나도 그들과 밀레니엄을 함께 맞았고 데뷔 당시와 팀 해체 후 각자 활동하던 모습까지 봤으니 다시 모여서 무언가를 한다는 게 반가워 해당 프로그램을 잘 챙겨본다.

그들도 나이를 먹었고 나도 나이를 먹다보니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이 있는데 방송임에도 수위를 넘나드는 19금 멘트들이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어렵게 무음 처리되는 몇몇 단어들은 그들의 표정과 반응을 보아 심상치 않은 내용이겠구나 싶어 같이 웃음을 터뜨리기도 한다. 모든 게 부끄러웠던 시기를 지나 이제는 모든 게 흥미로워지는 시기가 된 것 같다.


40년간 북클럽 모임을 가진 네명의 여성 다이앤, 비비안, 캐롤, 섀론. 호텔 경영자로 성공한 인생을 사는 싱글여성 비비안은 친구들에게 문제작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다음 독서토론 도서로 나눠준 후 호기심과 야유를 뒤로한 채 책읽기 주간이 시작된다. 남녀간 상열지사를 다룬 책의 내용과 맞물려 마법처럼 그녀들에게도 새로운 이야기들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일찍 결혼해 전업주부로 살던 다이앤은 남편이 1년전 사망한 후 같이 살자고 성화를 부리던 딸들을 만나러 가다 파일럿인 미첼을 만나게 된다. 결혼보다 성공이 우선이었던 비비안은 첫사랑인 아서와 40년만에 재회하게 되고 연방판사인 섀론은  이혼한 남편이 딸뻘인 여성을 만나 약혼 한다고 해 힘들어하다 데이트 어플을 통해 남성을 만나기 시작한다. 유명셰프이며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미첼 또한 은퇴후 남편과 사이가 서먹해진 것 같자 더 좋은 관계를 위해 노력한다.





그들의 만남과 사건의 시작은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의 독서토론이 끝난 후 미첼이 두번째 이야기를 건네주며 계속 진행된다. 남녀관계가 일주일만에 판가름 나는 건 아니듯 <그레이~> 시리즈도 후속편이 있으니까. 새로 사귄 남자친구도 재회한 남자친구도 하룻밤 상대로 만난 남성도 심지어 오토바이 수리에만 매달린 채 아내의 간절한 바램 따위는 관심도 두지 않는 남편조차 한단계 앞으로 나아가기가 조심스럽기만 하다. 그들을 묶고 있던 건 상대방이 됐건 자신이 됐건 시간이 지나야 풀릴 수 있는 부분이었으니까. 점점 꼬여가는 상황에서도 세번째 독서모임이 시작되자  <그레이~> 시리즈를 못 마땅해했던 섀론마저 <그레이~>의 세번째 이야기를 가져온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친구들과 헤어져야 하는 다이앤도 <그레이~>의 마지막 시리즈를 친구들에게 나눠준 후 자신의 길을 찾아간다. 헐리우드 영화의 오래된 해피엔드의 공식에 따라 다이앤 뿐만 아니라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제멋대로 해석하며 남자친구와 헤어지려던 비비안도 그에 대한 마음을 결국 인정한다. 전남편과 딸뻘인 여자, 아들 커플이 하는 합동 약혼식에 초대된 망측스런 상황에서도 섀론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대사를 인용해 품위있고 존재감 넘치는 축사를 하고 캐롤 또한 은퇴후 자신감이 떨어졌지만 아내에게 솔직하지 못했던 남편을 이해하게 된다.



영화에서 주목해 보게 된 것은 다이앤의 딸들이었다. 아버지가 갑작스레 돌아가시고 나자 홀로 남은 엄마가 못 미덥고 걱정되서 그런지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노인취급이었다. 오랫동안 전업주부로 살면서도 북클럽 친구들과 성공적으로 40년간 우정을 유지하는 사회성, 성긴 손으로나마 집 수리도 서서히 해가며 사는 독립성, 더군다나 새 남자친구까지 단숨에 만들어버리는 매력을 지닌 엄마를 몰랐던 것이다. 다이앤은 영화에서 1951년생이라고 고백하는데 생각해보니 우리 부모님과 같은 나이였다. 가끔 부모님과 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지만 두분 관계에 대해서 살가운 얘기를 들어본 적은 거의 없다. 내가 부모가 되고 아이들이 사춘기에 접어들자 우리 부모님은 그야말로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었고 나도 슬슬 노인 대접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분들에게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투척(?)한다면 나는 부모님들께 몹쓸 딸이 될까? 졸지에 효녀가 될까? 





아주 친해야만 할 수 있는 주제가 있는데 40년지기 우정을 가진 60대 여성들의 발칙한 로맨스를 풀어내기에 <그레이~> 는 더할 수 없이 좋은 촉매제가 되었던 것 같다.

나이 든 여성들의 음담패설이 난무하는 병맛 코미디 영화라고 지레 짐작하지는 말길. 각기 다른 라이프스타일을 살아온 큰 언니들의 솔직담백한 로맨스에 러닝타임 내내 웃음이 쿡쿡 터지는 일이 다반사일 테니까.


# 현재 인기 토픽

플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