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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만들어 준 진미 '황태해장국'...'황금빛 명품'을 품다

등록일2017.02.17 07:55 조회수2882

[연합이매진] '황금빛 명품'을 품다

한겨울 바람, 추위, 눈이 함께 만드는 진미 '황태해장국'

(인제=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하늘이 내린다’는 황금빛 명품, 황태.

명태가 황태가 되어 식탁에 오르기까지 무려 서른세 번의 손이 간다고 할 만큼 지극정성이 필요하다. 혹한의 칼바람 속에 겨우내 얼었다가 녹기를 수십 차례. 그 부들부들한 속살에서 뽀얗게 우러난 국물은 최고의 해장국으로 꼽힌다.

강원 인제군 북면 용대리 덕장에서 햇빛과 바람을 맞으며 건조되고 있는 황태 (사진/임귀주 기자)

구름 한 점 없이 파랗게 열린 겨울 하늘. 은빛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진다. 그리고 드넓은 덕장에 살포시 내려앉는다. 대낮 기온은 영하권 저 아래로 뚝 떨어져 있다. 여기다 계곡의 찬바람까지 쌩쌩 불어대니 체감온도는 더더욱 급전직하다.

“추워요! 그래도 일할 만해요!” 두툼한 마스크에 빵떡 모자를 뒤집어쓴 외국인 인부는 부지런한 손놀림으로 명태를 덕목에 걸어가며 밝게 웃는다. 이렇게 하루 이틀 사흘 시간이 흘러가는 사이 은빛 명태는 금빛 황태로 서서히 바뀌어간다.

◇ 인제 용대리, 최대 황태 생산지

국내 최대의 황태 덕장이 펼쳐진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황태 본산지라는 명성에 걸맞게 해마다 겨울이면 황태를 빚어내는 모습이 가히 장관이다. 인구 400여 명의 용대3리에만 모두 22곳의 덕장(전체 면적 23만1천여㎡)이 집결해 있다.

생산되는 국내 황태의 70%가량이 바로 이곳 용대3리에서 건조된다. 매년 2만여t의 황태가 새롭게 태어나는 것. 모두 3천만 마리로 매출액은 600억원에 이른다. 이곳 덕장에서는 비닐 끈에 코가 꿰인 채 계곡의 차가운 칼바람에 흔들리며 묵묵히 하늘을 바라보는 황태들의 자태가 비장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황태가 없으면 아마 주민의 80%는 이사가야 할 겁니다. 이 지역뿐만 아니라 인제를 먹여 살리는 효자 중의 효자가 황태인 셈이지요.” 이강열(57) 용대황태 영농조합법인 대표이사는 황태 예찬론을 줄곧 펴나간다.

설악산의 명찰인 백담사 입구에 있는 용대리가 황태마을이 된 것은 근래의 일이다. ‘살이 노란 명태’란 뜻의 황태는 함경도가 그 본향이었다. 한국전쟁 후 월남한 원산 출신의 실향민들은 용대리에서 황태를 건조하기 시작했다.

속초를 중심으로 새 터전을 마련한 이들은 남녘에서 황태 생산에 천혜의 여건을 구비한 곳이 바로 인제 용대리임을 새롭게 발견했다. 그때가 1963년 무렵. 명태가 황태가 되는 데 필요한 ‘바람’‘추위’‘눈’이라는 3대 요소를 모두 갖춘 땅이 바로 이곳이었다.

싱싱한 명태가 영양 만점의 황태가 되려면 밤낮의 큰 기온 차가 있어야 하고, 한낮의 온도도 영하 2도 이하로 내려가야 한다. 적절한 수분공급이 이뤄지는 것도 필수다. 육지의 바람과 해상의 기운이 계곡에서 절묘하게 만나는 용대리는 그런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안성마춤의 장소다. 삼한사온(三寒四溫)의 계곡풍은 겨우내 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는 백설과 함께 황태 탄생의 최대 공로자인 셈이다.

인제에 가면 ‘황태’를 간판에 새긴 음식점과 판매장을 쉽게 볼 수 있다. 특히 인제~속초를 잇는 국도변의 용대리에 가면 이 같은 식당과 가게들이 줄줄이 이어져 있다고 할 만큼 많다. 용대3리에 있는 황태 식당만도 16곳. 황태 판매장은 26곳에 이른다.

황태해장국과 황태구이 한 상

◇ "황태해장국 비결은 황태·무·들기름의 조화"

황태음식의 대표주자는 역시 황태해장국이다. 겨우내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겉모습은 노랗고 통통하되 속살이 희고 포슬포슬하게 변신한 황태가 무, 들기름과 함께 들통에 담겨 2시간 정도 푹 끓여지면 쌀뜨물처럼 뽀얀 국물이 구수하게 우러나온다. 이 육수에 콩나물, 두부, 파 등을 넣고 다시 끓인 뒤 달걀을 깨어 올려놓으면 맛 좋고, 영양 많고, 보기도 좋은 황태해장국이 태어난다.

“황태해장국의 비결은 황태와 무, 들기름의 조화예요. 특히 2시간가량 끓여내는 육수가 중요하지요.” 용대리에서 황태전문식당 ‘황태령’을 운영하는 홍정숙(52) 씨는 “겨우내 잘 건조된 황태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황태해장국이 주는 별미의 절반은 황태 덕장에서 만들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황태해장국과 더불어 황태 음식의 쌍두마차격인 황태구이정식. 탱글탱글 잘 건조된 황태에 간장, 설탕, 물엿, 양파, 무, 고추장 등 갖은 양념을 뒤섞어 만든 양념을 듬뿍 바른 뒤 식용유와 함께 후라이팬에 넣고 굽는다. 이렇게 한참을 굽다 보면 보글보글 튀겨오르는 기름과 함께 맛깔스러운 황태구이가 탄생한다. 여기에 황태국까지 곁들이면 금상첨화다. 황태해장국과 황태국의 차이라면 두부, 콩나물, 달걀이 들어가느냐 마느냐라고 할까.

황태해장국이 담백하면서도 구수하다면 황태구이는 맛이 달면서도 부드럽다. 서울에서 아내와 함께 강원도를 여행 중이라는 손님 안성호(49) 씨는 “이 근처를 지날 때면 저절로 생각하는 음식이 황태”라면서 “부드러운 맛의 해장국은 해장국대로, 식감이 풍부한 구이는 구이대로 감칠 맛이 느껴진다”고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아내 이상민(45) 씨도 “남편은 특히 술 마신 뒤에는 황태해장국부터 찾는다"며 웃는다.

황태음식은 성인만 좋아하는 게 아니다. 그 시원하고 구수한 맛은 아이들의 미각도 한껏 만족시켜 준다. 엄마, 아빠와 함께 경기도 남양주에서 온 조서은(9) 양은 “국물이 시원해요! 맛있어요! 구이도 단맛이 있어 좋구요!”라며 마냥 즐거운 얼굴이다. 식탁에는 표고버섯볶음, 황태채무침, 취나물, 창란젓갈, 참나물, 무생채 등 아홉 가지의 반찬이 곁들여져 풍성함을 더한다.

이렇듯 황태해장국과 황태구이는 밥상에서 ‘황태 이중주’를 입맛으로 만끽하게 한다. 특히 황태해장국은 현존 음식 중에서 알코올 분해효소가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져 애주가들의 ‘숙취해소제’로 사랑받고 있다. 조상들이 음주 후에 ‘북어국’을 찾곤 했던 데는 이 같은 이유가 있었다. 황태해장국은 일반 생선보다 저지방인 데다가 칼슘과 단백질 등의 아미노산도 풍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황태가 명태를 산계곡에서 넉 달여 동안 얼렸다 녹였다를 반복해 탄생시키는 거라면, 북어는 바닷가에서 한 달 동안 바람에 말려 만든다. 명태는 또 싱싱한 생물 상태의 ‘생태’, 얼린 ‘동태’, 말린 ‘북어’, 하얗게 말린 ‘백태’, 검게 말린 ‘흑태’, 딱딱하게 마른 ‘깡태’ 등 불리는 명칭도 많다.

황태국
황태구이

◇ 온난화로 동해산 명태 실종

지구온난화는 황태 생산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다. 명태는 전형적인 냉대성 어류여서 따뜻한 수온과 기온이 생존에 직접적 영향을 준다. 한때 동해안에서 풍부하게 서식하던 명태는 바다수온이 높아지면서 북상을 거듭해 현재는 동해에서 거의 잡히지 않는다. 이강열 대표이사는 “1990년을 전후해 동해산 명태는 사실상 실종됐다”며 “현재 생산되는 황태는 러시아산 명태로 만든 것”이라고 말한다. 이들 러시아산은 중국에서 황태로 탈바꿈한 뒤 국내에 반입돼 시장을 날로 잠식해 가는 상황이다. 현재 국내산 황태의 시장점유율은 20%가량이고 나머지 80% 정도는 중국산 수입품이다.

온난화로 명태를 덕장에 내거는 시기도 늦어져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이번 겨울의 경우 1월 초까지 따스한 이상기온이 이어져 예년 같으면 12월 하순이면 했던 명태의 덕걸이 작업을 20일가량 늦은 1월 중순 착수해야 했다. 명태를 덕목에 거는 방법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물에 담가서 걸었으나 요즘은 냉동 상태로 내걸어 건조기간을 단축시킨다.

국내 유일의 황태산업특구인 용대리에서는 매년 봄이면 ‘인제황태축제’가 열린다. 18회째인 지난해는 5월 5일부터 8일까지 용대3리의 삼거리에서 외지 방문객들에게 다양한 황태맛을 선사하고 미시령산소길 걷기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게 했다. 황태 음식은 기존의 해장국과 구이에서 황태라면, 황태강정, 황태빵 등으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7년 2월호 [음식기행] 코너에 실린 글입니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7/02/16 08:01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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