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7년 독일 그랑프리 우승 직후의 니키 라우다
'니키 라우다(Niki Lauda)'를 아시나요? 메르세데스-AMG 회장인 그는 카레이서 출신입니다. 레이싱 무대에서 활약하던 현역 시절, 그의 별명은 '불사조'였습니다.
그가 단순히 빨간색 페라리 F1 머신을 탔기 때문이 아닙니다. 불사조처럼 실제 죽음에서 살아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위기는 그가 태어난 1949년 2월 22일, 오늘로부터 27년 후에 찾아왔습니다.
▲페라리 312T2를 타고 질주하는 니키 라우다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카레이서의 길을 걷기 시작한 그는 페라리 F1 팀의 드라이버로 활약하게 됩니다. 모두가 꿈꾸는 페라리 드라이버였지만 니키의 태도는 남달랐는데요.
페라리 머신을 탄 소감이 어떠냐는 질문에 "깡통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깐깐한 성격이었습니다. 실력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는 생애 첫 폴 포지션과 우승을 차지하며 탄탄대로를 걷고 있었는데요.
▲빗속의 레이스는 언제나 죽음을 각오해야한다. 사진은 2016 모나코 GP의 루이스 해밀턴
1976년, 뉘르부르크링의 '그날'은 레이스 시작 전부터 분위기가 좋지 않았습니다. 전날 내린 비로 서킷이 지나치게 미끄러웠으나 11차 독일 그랑프리는 레이스를 강행했죠.
라우다의 페라리 머신은 왼쪽 코너를 돌던 중 연석과 부딪혀 완전히 중심을 잃었고 바위와 충돌 후 불타게 됩니다. 라우다의 헬멧은 충격으로 날아간 상태였으며 화마 한가운데서 오랜 시간 갇혀있어야 했습니다.
▲화염에 휩싸인 니키 라우다의 F1 머신
▲간신히 구조된 니키 라우다
여러 사람들의 노력으로 간신히 구조됐지만, 모두들 그가 살아날 가능성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얼굴은 비롯한 온몸에 심한 화상을 입었고 FRP 소재에서 발생한 유독가스를 너무 많이 들이마셨기 때문이었습니다.
혈액의 70%를 교체해야 할 정도로 그의 상태는 심각했습니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당시 병원에서는 라우다가 살아날 확률이 없는 것으로 판단해 임종의식까지 치렀다고 합니다.
▲사고 6주 만에 레이스로 복귀한 니키 라우다 (이미지 : Nurburgring Nordschleife)
불사조라는 별명에서 알 수 있듯 라우다는 죽을 고비를 넘긴 지 6주 만에 트랙으로 복귀했습니다. 그의 얼굴에 있던 화상이 채 아물기도 전이었습니다.
빠른 복귀 후에 꽤 괜찮은 성적을 보여줬지만 '빗길 레이스'에 대한 트라우마는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1976년 일본 그랑프리 결승전에서는 폭우가 내린다는 이유로 레이스를 기권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포디움에 올라선 니키 라우다(가운데)
그럼에도 니키 라우다는 아주 뛰어난 레이서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총 177번의 경기 중 폴 포지션 24번, 포디움에는 54번이나 올랐으며 그중 25번은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습니다.
페라리는 지난 2013년, 라우다를 기념해 '458 이탈리아 니키 라우다 에디션'을 발표했습니다. 부진을 겪고 있던 페라리 F1 팀에게 10년 만에 첫 우승을 안겨준 인물이니 그럴 만도 합니다.
▲페라리 니키 라우다 에디션 (이미지 : Ferrari)
당시 라우다가 탔던 F1머신처럼 흰색과 빨간색을 조합해 겉모습을 꾸몄으며 이탈리아 국기도 그려졌습니다. 금장으로 꾸민 핀 타입 휠도 돋보입니다.
미드십에는 4.5리터 V8 엔진이 장착돼 최고출력 570마력, 최대토크 55kg∙m를 발휘합니다. 여기에 7단 듀얼클러치를 조합해 100km/h까지 3.4초 만에 도달합니다.
▲영화 러쉬(Rush)
F1의 전설로 불리는 니키 라우다의 이야기는 론 하워드 감독의 영화 '러시(Rush)'를 통해서도 감상할 수 있습니다. 그의 영원한 라이벌 '제임스 헌트(James Hunt)'와의 경쟁이 인상적인 영화죠.
마침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오늘, 죽음의 빗길 레이스에서 살아 돌아 온 불사조의 이야기를 감상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1976년 독일 그랑프리, 니키 라우다의 사고 영상
이미지 : Wikipedia / Wikimedia
박지훈 jihnpark@carla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