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세먼지의 공격] 빈부에 따라 마시는 공기까지 달라지다니
(서울=연합뉴스) 신호경 강종훈 김은경 기자 = 미세먼지로 덮인 '뿌연 하늘'이 점차 일상이 되면서, 불황 속에서도 소비자들은 맑은 공기를 마시고 호흡기 건강을 유지하는데 어쩔 수 없이 많은 돈을 투자하고 있다.
마스크나 공기청정기처럼 직접 미세먼지를 막거나 거르는 제품뿐 아니라, 미세먼지 탓에 문도 못 여는 생활이 잦아지자 의류(빨래) 건조기 등 실내에서 집안일을 마칠 수 있는 가전도 큰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이처럼 수십~수백만 원의 공기청정기와 건조기 등을 서둘러 갖추는 것은 중산층 이상 경제 여력이 있는 가정의 얘기일 뿐. 상당수 저소득층 가정은 여전히 마스크를 쓰고 볕과 바람에 빨래를 말리며 미세먼지와 싸우고 있다.


◇ 문을 못 여니…실내 의류건조기 매출 16배로
23일 온라인 쇼핑사이트 11번가(SK플래닛 운영)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21일까지 대표적 '미세먼지 특수' 품목인 황사용 마스크, 공기청정기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2%, 88%씩 크게 늘었다.
산소를 깡통에 담은 산소캔(19%), 코에 끼워 넣는 코마스크(22%), 공기정화식물(46%) 등의 매출도 불었다.
특히 실내 의류 건조기는 무려 작년 동기의 16배까지 뛰었고, 미세먼지 배출 효과에 대한 뚜렷한 의학적 근거가 없음에도 삼겹살 역시 33%나 더 팔렸다.
미세먼지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자, 이제 단순히 외출을 삼가고 마스크를 찾는 일뿐 아니라 대중의 관심이 점차 미세먼지로 늘어난 실내생활 전반으로 넓어지고 있다는 게 SK플래닛의 진단이다.
실제로 SK플래닛이 같은 기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언급된 키워드를 분석한 결과, 1년 전보다 실내(139%↑), 공기청정기(42%↑) 등의 단어가 가장 뚜렷하게 늘었다.
또 다른 온라인몰 롯데닷컴에서도 최근 3개월(2016년 12월 14일~2017년 3월 13일) 의류 건조기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의 15배로 급증했다.
티몬에서 역시 이달 들어 '중국 베이징보다 서울 공기가 더 나쁘다' 등의 보도가 잇따르자, 21일까지 공기청정기 매출이 지난달 같은 기간보다 53%나 늘었다.
현대홈쇼핑과 온라인 현대H몰의 3월 공기청정기 매출도 각각 1개월 전보다 61%, 78%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 공기청정기 50만원대가 주류…100만원 넘는 제품도 수두룩
이처럼 가족, 특히 아이들 건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구매 버튼을 누르지만, 서민 입장에서 이런 미세먼지 관련 장비 가격은 큰 부담이다.
더구나 '중국발 미세먼지 유입' 현상만 없었더라면 지출하지 않아도 될 가욋돈이라 더욱 아까울 수밖에 없다.
모 대기업 부장 김 모 씨(구반포동·47)는 올해 봄 미세먼지 농도가 '나쁨'으로 표시된 날이 이어지자 약 2주 전 의류건조기와 의류관리기를 각각 약 100만 원씩 주고 샀다.
김 씨는 "미세먼지 때문에 문을 열어 바람을 맞을 수가 없으니, 웬만한 일은 모두 실내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큰마음 먹고 관련 제품을 샀다"고 밝혔다.
실제로 요즈음 독특한 디자인 등으로 인기를 끄는 'LG전자 퓨리케어(AS281DAW)' 공기청정기의 가격은 온라인에서 96만~145만 원 수준이고, 'LG전자 트롬 전기식 건조기(8kg)'도 110만 원대가 훌쩍 넘는다.
티몬에서 올해 들어 가장 많이 팔린 공기청정기 모델은 '삼성 블루스카이 5000(AX60K5580WFD)'였는데, '베스트셀러'로서 대중적이라지만 가격은 45만 원대로 절대 싸지 않다. 같은 기간 가격대별 공기청정기 매출 비중을 봐도 20만 원 이하(21%), 40만 원 이하(29%)보다 40만 원 이상(50%)이 월등했다.
물론 20만~30만 원대 보급형 저가 공기청정기도 있지만, 고가 제품들과 어느 정도 정화 능력의 차이가 있다는 게 유통업체들의 설명이다.
한 달 2만~5만 원 정도의 렌탈료를 내고 공기청정기를 빌려 쓰는 방법도 있지만, 하루 이틀 사용할 제품이 아닌 만큼 수년 동안 임대하면 이 비용 역시 수 백만 원에 이른다.
더구나 최근 미세먼지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한 가정에서 방마다 공기청정기를 두는 사례도 늘고 있다. 이럴 경우 '맑은 공기'를 위한 지출 규모는 두 세배로 뛴다.
중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나 모 씨(서울 송파구·32)는 항상 출근할 때 마스크를 사용하고, 홍삼차를 보온병에 넣어 수업 도중에 수시로 따뜻한 차를 마신다. 아울러 거실과 부모님 방, 자기 방까지 집안 모든 방에 각각 모두 3대의 공기청정기를 설치했다. '삼성 블루스카이 5000(AX60K5580WFD)' 가격(45만 원대)으로만 환산해도 거의 150만 원을 투자한 셈이다.
나 씨는 "직업상 목을 많이 사용하는데, 요즈음 미세먼지 때문에 목 상태가 너무 많이 안 좋아졌다"며 "돈은 많이 들지만 미세먼지 노출을 피하기 위해 최대한 모든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일정한 소득에 기존 생활비도 빠듯한 중산층 이하 저소득층 가정이다. 이들의 선택은 결국 수 천 원대 황사용 마스크나 코마스크, 수 만원대 공기청정 식물 정도. 빈부 격차가 결국 미세먼지 노출 격차로, 다시 이 차이가 호흡기 건강의 불평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shk999@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7/03/23 06:11 송고
[미세먼지의 공격] "밖에 나가는게 공포…내 생활 잃었어요"

차량용 필터 창문에 설치…대선주자에게 미세먼지 공약 요구
(서울=연합뉴스) 신호경 강종훈 김은경 기자 = 3세 아들을 둔 워킹맘 김 모(여·35) 씨의 생활은 최근 미세먼지 때문에 완전히 바뀌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아침마다 집 주변 성북천에서 조깅을 즐겼으나, 요즈음에는 미세먼지가 많은 밖에 나가는 것 자체가 두려워 헬스장을 다닌다.
특히 아이와 밖에서 노는 일은 꿈도 꾸지 못한다. 대부분 집에서 놀아주거나 실내 키즈카페를 이용한다. 심지어 집 바로 옆 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려다줄 때도 미세먼지 걱정에 차로 움직일 때도 있다.
밖에 잘 나가지 않으니 인터넷쇼핑이나 홈쇼핑에 집중하는 경우도 늘어 집에 쓸데없는 물건만 쌓여간다.
약국에서 마스크와 '아이봉(안구 세척제)'을 대량 구매해 항상 집에 갖춰두는 것도 '필수 장보기'가 됐다. 구강 세척제 '가XX'도 여러 통 사다 놨다. 미세먼지 탓인지 남편이 항상 입 안이 껄끄럽다며 구강 세척제를 찾기 때문이다.
집안 공기청정기는 늘 최대 속도로 가동하고, 민원을 넣어 구립 육아지원센터에도 공기청정기를 두게 했다.
미세먼지 농도를 확인하며 '나쁨'이면 '밖에 어떻게 나가나', '보통'이면 '언제 나쁨으로 변할까', 거의 매일 아침을 걱정으로 시작하는 일이 반복된다.
김 씨는 "요즈음 '공기 질 때문에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나', '아이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고 한숨을 쉬었다.

수도권에 거주하는 이 모(여·31) 씨는 미세먼지 때문에 비염이 갈수록 심해져 집에 공기청정기 2대, 공기측정기 1대를 설치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미세먼지 수치를 알려주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부터 확인하고, 집안 미세먼지 수준도 때마다 확인한다. 미세먼지가 심한 날은 가급적 외출하지 않고, 환기가 어려우니 집안에서 요리하는 일도 꺼린다.
최근 며칠 미세먼지가 심했을 때 렌즈를 꼈더니 결막염이 생겨 아직도 고생하고 있다.
이 씨는 "공기청정기가 없는 사무실에서 장시간 근무하면 콧물이 흘러 일에 집중하기 어렵다"며 "미세먼지 때문에 신경 쓸 게 너무 많아 눈물이 날 정도"라고 전했다.
아이와 반려동물이 있는 집은 챙길 것이 더 많다.
직장인 이 모(39) 씨는 만 3세 딸이 부쩍 감기에 자주 걸리는 이유가 미세먼지 때문이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방마다 공기청정기를 뒀고, 차 안에도 공기청정기를 설치했지만, 안심이 되지 않는다.
이 씨는 "아이를 데리고 외출할 때 주변 공기의 질을 바로 파악할 수 있도록 휴대용 미세먼지 측정기도 구매했다"며 "측정 결과가 나쁘면 최대한 빨리 실내로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강아지 두 마리를 키우는 정 모(31·여) 씨는 "강아지를 이틀에 한 번 산책시켜야 하는데 미세먼지 때문에 산책시키기 어렵다"며 "쇼핑몰이나 백화점, 마트 등은 대부분 반려견을 받지 않으니 개가 갈 곳이 없다. 개들이 스트레스를 받아도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답답해했다.
미세먼지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자 각종 자구책을 찾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지난해 5월 개설돼 현재 회원이 3만5천여 명에 달하는 네이버 카페 '미세먼지 대책을 촉구합니다'에는 최근 몇 달간 '베란다에 차량용 필터를 설치했다'는 글이 수십 개 올라왔다.
환기는 해야겠는데, 미세먼지가 걱정인 사람들이 궁여지책으로 차량용 필터 여러 개를 창문에 붙여 미세먼지를 막는 것이다.
카페 회원들은 성능 좋은 필터 브랜드와 필터를 창문에 고정하는 방법 등 각자의 비결을 공유하고 있다.

심지어 한 달 반 앞으로 다가온 대통령 선거에서도 미세먼지 문제는 서민 표심을 좌우할 중요한 이슈가 될 전망이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가 21∼22일 국민 참여 공약 문자를 받은 결과, 미세먼지 관련 국민 참여 공약은 1천700건이 넘었다.
문 후보는 "미세먼지도 걷어내고 여러분의 걱정도 덜어드릴 수 있도록 좋은 방법 찾아보겠다"고 답했다.
kamja@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7/03/23 06:11 송고
[미세먼지의 공격] 年 피해 10조원 넘어…소비영향 감안하면 경제에 큰 타격

(서울=연합뉴스) 신호경 강종훈 김은경 = 미세먼지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는 가운데, 대기오염에 따른 우리나라의 피해 규모는 연간 10조 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2060년께에는 피해액이 20조 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대기오염은 국민의 건강을 해칠 뿐만 아니라 야외활동과 산업 생산에도 영향을 미쳐 여러 분야에서 직·간접적으로 광범위한 피해를 유발한다.
23일 환경 당국과 학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에 따르면 현재 한국의 대기오염에 따른 사회적 비용은 연간 10조 원을 웃돈다.
배정환 전남대 경제학부 교수는 이 비용을 약 11조8천억 원으로 추산했다.
이는 미세먼지, 휘발성유기화합물(VOC), 질소산화물(NOx), 황산화물(SOx) 등 대기오염 물질 감소에 따른 사회적 편익을 보수적으로 책정해 산출된 금액이다.
1t(톤)당 피해 비용은 미세먼지가 약 196만 원, VOC는 175만 원, SOx가 80만 원이다.
배정환 교수는 "대기오염으로 인한 피해는 현재 보수적으로 따져도 10조 원대지만 소비와 산업활동에 미치는 파급 효과까지 더하면 훨씬 커진다"며 "경제적 피해는 물론이고 삶의 질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측면도 많다"고 말했다.
한국의 대기오염은 OECD 회원국 중에서도 가장 나쁜 수준이다.
OECD는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에서 40여 년 뒤인 2060년 OECD 회원국 가운데 한국이 대기오염으로 인한 조기 사망률이 가장 높고 경제 피해도 가장 클 것으로 예상했다.
2060년 대기오염의 사회적 비용은 한국이 1인당 연간 500달러로, 사회 전체로는 2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OECD는 관측했다. 현재 환율 기준으로 약 22조4천500억 원에 이르는 막대한 금액이다.
OECD는 대기오염으로 2060년 한국의 연간 GDP 손실 비율이 0.63%로 회원국 가운데 가장 클 것으로 전망했다.

최근에는 대기오염의 사회적 비용이 이보다 더 크다는 연구 결과도 나오고 있다.
강광규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매년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중국발 미세먼지 및 황사현상은 사회적으로 심각한 피해를 야기하고 있다"며 "최근의 대기오염물질 피해 상황과 정도가 잘 반영된 새로운 대기오염물질 사회적 피해 비용 추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 연구위원은 도시 지역 초미세먼지(PM2.5)의 사회적 비용을 1㎏당 약 45만 원으로 추정했다.
환산하면 이는 1t당 4억5천만 원으로, '보수적' 기준으로 추정한 사회적 비용의 230배에 이른다.
한국의 대기오염이 심각한 수준임을 보여주는 지표는 최근에도 연이어 발표되고 있다.
지난 21일 서울 공기 질은 세계 주요 도시 중 거의 최악 수준으로 조사됐다. 다국적 커뮤니티 '에어비주얼'(AirVisual)에 따르면 이날 오전 서울의 공기품질지수(AQI·Air Quality Index)는 179로, 인도 뉴델리(187)에 이어 세계 주요 도시 중 두 번째로 대기오염이 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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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7/03/23 06:11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