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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여배우를 빛나게 하는 '시간위의 집'

등록일2017.04.04 14:46 조회수2675

(서울=연합뉴스) 정주원 기자 = 여배우가 원톱 주연을 맡은 괜찮은 상업영화를 만나기는 어렵습니다. 아역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우든 여우든 비중 있는 역을 찾기 힘든 실정입니다.

하지만 같은 상업영화라도 하우스 스릴러, 오컬트 영화는 연기력만 검증됐다면 오히려 여배우와 아역에게 유리한 장르입니다. 다만, 작품의 수가 적다는 것이 아쉽죠. 그런면에서 '시간위의 집'은 반가운 영화입니다.

'시간위의 집' [리틀빅픽처스 제공]

1992년 11월 11일 '미희'(김윤진)는 피 칠갑을 한 채 난장판이 된 집에서 눈을 뜹니다. 남편은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고, 어린 아들은 눈앞에서 지하실 창고의 문으로 빨려가듯 사라집니다. 이튿날 존속살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미희는 결백을 주장하지만, 유죄판결을 받고 수감됩니다.

2017년 미희는 후두암 말기로 가망이 없다는 진단과 함께 조기 출소해 폐가가 되다시피 한 집에 연금됩니다. 남편과 아들을 빼앗긴 그 사건 이후로는 더는 신을 믿지 않게 되었지만, 그녀의 결백을 믿어주는 단 한 사람은 얄궂게도 이제 막 서임한 듯한 목회자 '최신부'(옥택연)입니다.

25년 전 사건과 관련된 기록을 파헤치던 최신부는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하면서 이야기 전개에 속도가 붙습니다.

'시간위의 집' [리틀빅픽처스 제공]

임대웅 감독의 영화 '시간위의 집'의 매력은 '검은 사제들'을 연출한 장재현 감독이 시나리오를 썼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김윤진과 '여배우를 위한 배역'의 만남이 아닐까 싶습니다.

시나리오 속 미희 역은 원톱 주연임은 물론, 젊은 미희와 노쇠한 미희로 상반된 두 면모를 보여줄 기회이기에 연기자라면 누구나 탐낼만합니다. 또 스피드감 있는 액션과 감정연기 포인트가 스토리 곳곳에 자리 잡고 있고, 모성애라는 시대 불변의 감동코드도 갖춰져 있습니다.

'시간위의 집' [리틀빅픽처스 제공]

배우 조재윤 씨는 미희의 남편 역을 맡아 콤플렉스와 독선에 사로잡힌 남성 '철중'(조재윤)을 박력 있게 표현했습니다. 다만 기대보다 평면적인 연기를 보여준 것은 다소 아쉬웠습니다.

철중은 알코올 중독증세를 보이는데다가 아내의 전남편에 대한 질투에 사로잡혀 무너져가는 인물입니다. 리얼한 연기를 위해 현장에서 적지 않은 음주를 했다고 하는데, 음주 연기가 오히려 섬세한 감정표현을 둔화시킨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의붓아들을 대하는 태도에는 질투와 번민이 없는 일차원적인 분노만 가득하고, 아내를 향한 투정에는 사랑이 빠져있는 듯 보입니다.

'시간위의 집' [리틀빅픽처스 제공]

최신부를 연기한 2PM 멤버 겸 배우 옥택연은 마음이 따뜻한 청년의 면모를 풍부하게 보여주었습니다. 다만 단순히 인자한 신부가 아니라, 사건을 파헤치는 탐정처럼 기민한 캐릭터도 내포하고 있지만, 관객의 긴장감을 끌고 가는 힘은 부족했다는 느낌도 듭니다.

'시간위의 집' [리틀빅픽처스 제공]

배우를 제외한다면 '시간위의 집'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집'입니다.

집은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있을 수 있는 안식처이자 바깥세상의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공간입니다. 그런데 '시간위의 집'의 주 무대가 된 미희의 저택은 그 고유의 기능과 의미를 상실한 집으로 설정됐는데, 이는 침해되고 공격당한 모성애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시간위의 집' [리틀빅픽처스 제공]

'시간위의 집'을 관통하는 주된 모티브는 모성애입니다. 수십 년이 흐르는 동안 '인간 미희'의 삶이 다 망가졌는데도, '어머니 미희'는 여전히 등불과 녹슨 칼을 들고 실종된 아들을 찾아 헤맵니다. '어머니에게는 자식이 신앙이다'라고 말하는 미희. 사람도 변하고 세상도 변했지만, 한 가지 변하지 않는 것이 바로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인가 봅니다.

'시간위의 집' [리틀빅픽처스 제공]

아울러 시간 역시 이 작품에서 중요한 모티브입니다. 바깥세상은 시간이 흘러 미희는 노파가 되고 집은 폐가가 됐는데, 집 안은 이상하리만치 시간이 멈춘 것 같습니다. 100년에 가깝게 문 위치 하나 바뀌지 않고 비슷한 구조와 분위기를 보여줍니다.

'시간위의 집'은 이처럼 시간이 멈춘 공간에서 오는 본능적 불안 심리를 오컬트적으로 해석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5일 개봉.

'시간위의 집' [리틀빅픽처스 제공]

jwc@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7/03/29 20:15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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