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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소설 집필이 가장 쉬웠어요! 웹소설 입문 시리즈(3)

등록일2017.04.13 10:05 조회수4189



‘사장님’ 소리를 듣는 것은 상상만 해도 기분 좋은 일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회사를 뛰쳐나와 창업에 도전한다. 요즘에는 대개 인기 프랜차이즈인 카페나 치킨집을 하기 마련인데, 1995년에 가장 핫한 창업 아이템은 바로 도서대여점이었다. 그런데 이 도서대여점이 인터넷 소설의 몰락에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사이버 소설로도 불리는 인터넷 소설은 90년대 말부터 2천 년대 중반까지 웹에서 연재한 소설을 일컫는다. SF&판타지가 대세였던 PC통신문학과 달리, 인터넷 소설에서는 하이틴 로맨스의 인기가 급부상함에 따라 독자층이 10대 여성들까지 확대됐다는 특징이 있다. 그러나 질적인 면에서는 PC통신문학보다 오히려 퇴보했다. 도서대여점으로 인한 출판 수입의 급감과 현저히 낮은 작품성은 큰 위기를 불러왔다.



공산품이 된 판타지


[출처 = 슈퍼스타K4]


『퇴마록』, 『드래곤 라자』의 히트를 통해 판타지 소설의 대중성을 높이 본 출판사들은 소설 출간의 문턱을 확 낮췄다. 인터넷에 연재하는 판타지 소설들은 어느 정도 인기만 있으면 출판사와 바로 계약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작가의 풀이 커짐에도 불구하고, 인터넷 판타지 소설은 오히려 대중의 외면을 받았다. 심지어 양산형 판타지 소설의 줄임말인 ‘양판소’라는 오명이 붙은 작품들도 있었다.

작품의 질적 수준이 PC통신문학에서 진보하기는커녕, 퇴보했다는 게 문제였다. 우선 문장 자체가 엉망인 작품이 허다했다. 비문은 고사하고 맞춤법이나 맞게 쓰면 다행인 경우까지 있었다. 이는 작가가 퇴고를 대충 했거나, 아예 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통은 출판사에서 원고를 교정함과 동시에 작가의 집필을 관리하기 마련인데도, 인터넷 소설의 경우에는 그런 시스템이 작동되지 않았다. 왜였을까? 원인은 잠시 후에 살펴보자.

문장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양판소라는 치욕스런 호칭을 탄생시킨 데는 몰개성적 집필 역시 한 몫 했다. 자신만의 세계관을 창조하기보다는 던전 앤 드래곤, 드래곤 퀘스트와 같은 유명 게임을 그대로 베끼기 바빴다. 소재의 폭이 좁은데다 플롯의 진행 역시 똑같았기 때문에, 공장에서 찍어낸 것 같다는 비난을 받았다.

대중은 서양 판타지 소설로 외유했다. 완성도 높은 유니버스(세계관)를 갖춘 『해리포터』 와 『반지의 제왕』 시리즈는 국내에서 많은 각광을 받았다. 2003년 『해리포터』 시리즈의 5탄인 『해리포터와 불사조 기사단』의 초판 량만 무려 100만부인데 비해, 국내 판타지 소설은 책방에서나 빌려보는 책 취급을 받았다. 국내 판타지의 산실인 인터넷 판타지 소설이 제 기능을 못함으로써 벌어진 사달이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일진 로맨스

10대 여학생 독자 공략에 성공해 높은 인기를 얻은 인터넷 로맨스 소설(이하 인소)의 특징은 일진과의 사랑이다. 양판소와 마찬가지로 천편일률적이었던 인소의 줄거리를 한 줄 요약하면 이렇다. 

지극히 평범한 외모와 착한 성격을 가진 여고생이 잘생기고 싸움 잘하는 일진과 사랑에 빠진다. 

이전까지의 로맨스 소설에서는 재벌이 남자 주인공인 것에 비하면 큰 변화다. 따라서 이 시기의 인소를 ‘일진 로맨스’라고 부르기도 한다.

학생에게 금기인 염색, 음주, 흡연을 자유자재로 하는 일진은 꼰대들과 맞서는 반항아로 미화된다. 중2병을 앓는 소녀에겐 일진은 멋있어 보인다. 게다가 일진은 학교의 먹이사슬 최상위 포식자이기 때문에, 일진의 여친은 학교의 퍼스트 레이디로서 모든 여학생들 위에 군림할 수 있다.

 여학생 독자들은 IF로 시작하는 가정법을 써내려간다. '어쩌면 내가 학원에 가지 않고, 잘생긴 일진과 데이트를..' 여주인공은 독자의 대리만족 도구인 셈이다. 독자의 이런 심리를 가장 잘 잡아낸 작가 귀여니의 『그놈은 멋있었다』는 80만부, 『늑대의 유혹』은 3백만부나 팔렸다.


은성은 더 놀란듯했다... ㅇㅇ☜이런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엉엉엉..ㅜㅜ난 주그따..ㅜㅜ
“내 입술에 입술 비빈뇬은 니가 첨이였어..-
-^책.임.져.”
“><ㅋㅋㅋ그말을 믿으라구 하는 소리냐..겔겔겔><”

― 귀여니, 『그 놈은 멋있었다』



그러나 인소는 대중에게 큰 반감을 샀다. 귀여니를 비롯한 많은 하이틴 로맨스 소설들이 띄어쓰기, 맞춤법 등 문법을 아예 무시하고, 모든 묘사를 이모티콘으로 대체했기 때문이다. “수준미달이며, 문학으로 볼 수도 없다”는 비판까지 나왔다. 작가 귀여니는 ‘국어 파괴범’이라는 말까지 들었다.

소수의 작품을 제외하고는 양판소와 일진 로맨스 모두 판매량이 적었으며, 세간의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출판사는 꾸준히 책을 찍어냈다. 대중들은 어떻게 이런 수준 이하의 책들이 양산될 수 있는지 궁금해 하기 시작했다.



잘못된 만남 : 출판사와 도서 대여점


1994년 대구 시내에 단 하나뿐이던 도서 대여점의 수는 불과 1년 만에 5백여 개로 늘어난다. 전주와 군산에서도 같은 상황이 벌어진 것으로 보아 도서 대여점의 폭발적인 증가는 전국적인 현상이었다. 이윽고 도서 구입 양상에 큰 변화가 나타났다.


소설을 구매하기 보다는 대여한다는 인식이 확산된 것이다. 이 때문에 도산하는 영세 서점이 속출했다. 의외인 것은 도서 대여점을 대하는 출판사의 태도였다. 출판사가 낸 책을 팔아주는 곳이 서점이므로, 서점의 몰락은 출판사로서도 크나큰 손실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출판사의 든든한 새 파트너가 있었다. 바로 도서 대여점이다.

전성기 시절 대여점의 수는 만 오천 곳이 넘으니, 한 곳 당 책 한 권만 사줘도 만 오천 부나 팔리는 셈이다. 이는 과거 출판사들의 일반 단행본 초판 물량이 약 5천부인 것을 생각하면 놀라운 수치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책을 사 주는 대여점이 있으니, 출판사는 원고 교열이나 작품에 대한 조언에는 무관심했다. 자연스레 저급한 인터넷 소설책들이 양산됐다. 그렇지 않아도 서적 구매에 돈을 아끼던 대중들이 인터넷 소설의 출판본을 구매할 리 만무하다. 인터넷 소설은 점점 마이너 문학으로 전락하게 된다.

[출처 = 불법 다운로드 방지 공익광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인터넷 소설은 생사의 기로에까지 서게 됐다. 인터넷에서 스캔본과 텍스트 파일의 불법 공유가 기승을 부림에 따라, 대여점 산업이 사양길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과거 무협 소설 작가로 활약했던 웹소설 연재 플랫폼 문피아의 김환철 대표는 파이낸셜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원고료가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며, 당시의 어려움을 회상했다. 대여점과 소수의 독자에게만 의존하던 인터넷 소설의 당연한 말로였다.



마치며

인터넷 소설이 남긴 과제는 자립이었다. 더 나은 작품을 쓰면, 대중이 책을 사주리란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았다. 출판시장은 갈수록 작아졌기 때문이다. 주요 수입원을 인터넷 소설의 출판본이 아니라, 유료 연재 서비스로 바꿔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그러나 인터넷 콘텐츠를 돈 주고 구매한다는 의식이 거의 없다는 문제가 있었다. 인터넷 소설로부터 바통을 넘겨받은 웹 소설은 과연 이 난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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