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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정치영화의 틀을 깬 최민식의 '특별시민'

등록일2017.04.26 08:10 조회수2003

(서울=연합뉴스) 정주원 기자 = 영화 '내부자들'의 흥행 이후 정치권의 부패를 소재로 한 영화가 심심찮게 스크린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정치 담론의 핵심인 통치구조를 직접 조명하지는 않습니다. 대신 정경유착, 라인 타기, 국가재난 등 사회적인 이슈가 됐던 실제 사건을 연상케 하는 소재에 정계 인사를 연루시키는 우회적인 경로를 택했습니다. '정 대 부정'의 세계관이 뚜렷하고, 스토리나 감정선도 상당히 극적인 전개를 보여주는 것이 특징입니다.

박인제 감독의 신작 '특별시민'은 정치영화임에도 이러한 공통점을 모두 뒤집었다는 점에서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영화 '특별시민' [쇼박스 제공]

극 중 주인공 '변종구'(최민식)는 3선 국회의원 출신의 현직 서울특별시장으로, 최종 목적지는 대선 승리입니다. '심혁수'(곽도원)를 선거대책본부장으로 앉히고 헌정 사상 최초로 3번째 시장 선거에 출마합니다.

26세의 광고회사 직원 '박경'(심은경)은 우연히 참가한 서울시장 청춘 콘서트에서 변종구의 눈에 들어 그의 선거캠프에 참여합니다. 타고난 총명함과 순발력으로 선거판의 젊은 피로 부상하지만, 권력욕으로 가득한 정치판의 실상을 목도하며 혼란에 휩싸입니다.

영화 '특별시민' [쇼박스 제공]

박인제 감독은 정치인을 주인공으로, 정치 수준의 집약인 선거를 중심소재로 삼는 정공법을 택했습니다. 권력욕에 관한 근본적인 이야기를 하기 위한 필연적 선택이었다고 합니다.

130분의 러닝타임 내내 로맨스나 조폭 싸움 등 정치영화의 무거움을 덜어주는 단골 메뉴는 보이지 않습니다. 자극적인 스토리보다는 최민식, 곽도원, 심은경, 문소리 등 연기파 배우들을 전면에 내세워 입체적인 인물묘사에 중점을 둔 느낌입니다. 그 결과 극의 흐름이 자연스러워지고, 관객들이 자유롭게 판단할 수 있는 공간이 늘어났습니다.

영화 '특별시민' [쇼박스 제공]

아울러 정치물과 법정물에서 흔히 보이는 '정의 대 부정의'라는 흑백 세계관이 배제되면서 스토리에 성숙미가 더해졌습니다. '특별시민'의 등장인물 중 완벽하게 정의로운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각 인물은 자신의 권력욕에 충실한 결정을 내릴 뿐입니다. 극 중 가장 양심적인 인물인 '박경'(심은경)조차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되도록 선거법을 여러 번 위반합니다.

영화 '특별시민' [쇼박스 제공]

특정 정당을 암시할만한 구체적인 공약도 드러나지 않고, 각 당의 정치색도 철저히 가려졌습니다. 박경이 캠프의 정치색에 대해 혼란스러워하자 심혁수는 "색깔 섞으면 다 검은색이야"라며 침묵과 복종을 강요합니다. 엔딩 내레이션으로 바람직한 정치상을 제시하는 영화 '판도라'나 특정 정치인의 사진과 영상을 노출한 '더 킹'과는 접근법이 사뭇 다른 느낌입니다.

뼈있는 웃음 코드도 작품의 묘미를 더합니다.

극 초반에 스냅백 모자를 쓴 변종구가 청춘 콘서트에서 열창한 곡명은 '죽일 놈'입니다. 가사 중 진심 없는 사과가 반복됩니다.

영화 '특별시민' [쇼박스 제공]

강아지를 안고 있는 변종구나 심혁수의 유별난 구두 사랑도 웃음과 복선의 역할을 톡톡히 합니다. 음식 먹여주기로 권력의 서열을 정하는 장면은 정치권의 졸렬한 행태를 꼬집는 것이어서 재미있습니다.

또 심혁수는 선거전을 두고 '똥물에서 진주 꺼내기'라고 빗댑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두 유력 주자의 이름은 '변'종구와 양'진주'입니다. 똥도, 똥물이 묻은 진주도 모두 더럽다는 메시지를 암시합니다. 지지율이 제일 낮은 후보의 이름은 험한 길을 비꼰 '허만길'입니다.

영화 '특별시민' [쇼박스 제공]

'특별시민'은 시작만큼이나 끝도 임팩트가 강합니다.

마지막까지 박경에게 남아있는 어떤 물건은 투표용지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영화가 관객을 투표와 참정으로 이끌기를 바란다는 감독과 배우들의 염원이 담겨있는 것 같습니다. 26일 개봉.

영화 '특별시민' 포스터 [쇼박스 제공]

jwc@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7/04/25 18:36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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