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도 하남시 스타필드 제네시스 스튜디오에 특별한 모델 한 대가 전시됐다. 바로 ‘GV80 컨셉트’. 올해 4월 뉴욕오토쇼에서 공개한 제네시스 최초의 SUV 컨셉트카다. 다른 매체 다 갔다 오길래 우리도 서둘러 다녀왔다.
제네시스도 SUV를 만든다는 계획은 전혀 놀랄 것이 없다. 람보르니기와 마세라티, 롤스로이스도 SUV를 만드는 마당에 오히려 만들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 GV80은 2021년까지 제네시스 벳지를 달고 태어날 2대의 SUV 중 첫 번째 모델에 대한 미리보기다.
GV80이 특별한 이유는 또 있다. GV80은 제네시스가 벤틀리에서 근무하던 루크 동커볼케(2016년 1월~)와 이상엽(2016.05~) 디자이너를 영입한 뒤 처음 선보이는 컨셉트카다. 현대차 지붕아래서 다시 손발을 맞추게 된 ‘드림팀’의 처녀작이다.
현재 제네시스 라인업은 EQ900과 G80 두 대다. 모두 현대차 소속이던 시절 태어났다. 2015년 11월 현대에서 분리된 제네시스가 현대차와 다른 자신만의 디자인 정체성을 구축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에 등장한 컨셉트카가 GV80이다.
제네시스의 ‘애슬레틱 엘레강스(Athelic Elegance)’를 현대차의 ‘플루이딕 스컬프쳐(Fluidic Sculpture)’와 시각적으로 차별화할 차례.
스타필드가 문을 여는 10시, 제네시스 스튜디오는 한산했다. 여유로운 공간에서 GV80을 만났다. GV80의 디자인은 전체적인 비율과 디테일에서 모두 기존 제네세스 모델들과 제법 큰 차이를 보인다. 멀리서 봐도 ‘컨셉트카‘스런 외모는 지나는 이들의 발길을 끌기 충분하다.
기자가 사진을 찍는 사이에도 몇몇 손님들이 전시장을 들어서며 하나같이 묻는다. ‘이거 파는 거예요? 어머~ 너무 예쁘다.’ 이 중에는 ‘차알못’으로 짐작되는 아주머니들도 많았는데, 그들의 눈에도 항상 보던 차들과 뭔가 다르긴 했나 보다.
GV80의 외모에서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부분은 ‘=’ 모양 헤드램프. 수학선생님 발음대로 '이꼬르'모양이라고 해야할지, '등호'라고 해야할지 알수 없지만, 두 줄로 된 독특한 헤드램프는 일단 합격이다.
멋이 있고 없고는 좀 더 지켜볼 일이다. 각 램프 안에는 크리스털처럼 영롱한 LED 광원 4개가 빛을 낸다.
전면 중앙을 차지하는 거대한 그릴도 GV80만의 특징. 그간 현대차의 캐스케이딩 그릴과 이름 말고 뭐가 다르냐는 소리를 들었던 제네시스의 크레스트 그릴이 GV80을 통해 확 바뀌었다.
프리미엄 브랜드의 상급 차종임을 과시하려는 듯 크롬을 아낌없이 사용했고, 다이아몬드를 닮은 패턴으로 안을 채웠다. 패턴은 현행 쏘나타 터보와 제네시스 G80 스포츠와 비슷하지만 디테일이 더 뛰어나다.
▲GV80 컨셉트
▲쏘나타 뉴라이즈 터보
▲G80 스포츠
옆으로 돌아가 보자. 극단적으로 짧은 앞 오버행과 긴 휠베이스, 나지막이 떨어지는 지붕선이 꽤나 스포티하다. 전형적인 후륜구동 스포츠세단과 닮았다. 양산까지 이런 비율을 유지할지는 미지수.
측면 캐릭터라인은 아주 멋스럽다. 헤드램프에서 시작돼 리어램프를 찍고 다시 앞으로 가는 주름은 GV80 디자인의 백미다.
컨셉트카에 달린 사이드미러는 영화 스타트랙에 등장하는 ‘USS 엔터프라이즈’호 조종석의 브라운관 모니터와 같다. GV80에도 조그맣고 날렵한 카메라가 사이드미러를 대신했다. 크롬과 카메라 사이에 방향지시등까지 끼워 넣은 센스는 칭찬받아 마땅하다.
앞범퍼 좌우 끝에서 앞바퀴를 향해 들어가는 흡기구와 앞바퀴에서 뒤로 뻗어 나오는 펜더 하단부는 디자인 연결성이 뛰어나다. 은은한 금빛 소재도 그렇고, 다이아몬드처럼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다른 빛을 반사하는 패턴도 그렇다. 이 패턴은 대시보드 상단 모니터와 룸미러 뒷면에도 반복된다.
크래스트 그릴과 헤드램프 사이에서 시작해 옆면을 한 획으로 가로지르는 케릭터라인은 EQ900과 닮았다. 리어램프 진전에 다다른 케릭터라인은 돌연 앞으로 방향을 바꿔 리어펜더에 힘을 실어준 뒤 슬쩍 사라진다.
휠은 무려 23인치. 크기도 크기지만 구멍이 숭숭 뚫린 격자무늬 스포크가 더 눈길을 끈다. 실제 효과는 검증된 바 없지만, 가볍고 튼튼하며 브레이크 냉각에도 유리할 것처럼 보인다. 휠 청소는 정말 어려울 것 같다.
같은 구조로 된 B필러와 C필러는 유리에 덮여있다. 삼각형 모양 D필러 끝부분과 만나는 옆유리 모서리는 금속으로 마무리하고 ‘GENESIS’ 레터링을 음각으로 새겼다. 독창적이고 세련됐다.
리어램프는 헤드램프와 같은 ‘=’ 모양이다. 광원은 일반적인 ‘가스 레이저’ 대신 ‘광섬유 레이저’를 사용했다고 한다. 덕분에 보다 선명한 빛을 내고 에너지 효율을 높였다는 설명.
뒷범퍼 하단 가로로 길게 뚫린 구멍은 배기구가 아니다. 수소연료전지 파워트레인을 갖춘 GV80은 이곳을 통해 구동 중 발생하는 열을 배출한다.
아쉽지만 실내는 유리 너머로 구경할 수밖에 없었다. 한 대 밖에 없는 귀중한 컨셉트카 인지라 공개 불가란다. 빛 반사 없이 사진이라도 잘 찍고 싶었지만, 현장에는 열쇠가 없다는데 별 수 없었다.
유리 너머 GV80의 실내는 독립 4인 구조를 갖췄고, 미래적인 디자인과 고급스러운 소재가 돋보였다. 대시보드 상단을 가로지르는 22인치 곡면 OLED 모니터는 미래지향적 느낌을 담당하고, 시트를 덮은 ‘세미 아닐린(Semi-Aniline)’ 가죽으로 고급감을 연출했다.
합성염료인 아닐린으로 염색한 아닐린 가죽은 표면의 주름과 흠집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에 엄선된 품질의 좋은 가죽만 사용할 수 있다. 세미-아닐린은 풀-아닐린 가죽 표면에 코팅을 더해 내구성을 보완한 가죽. 현대차 중에는 유일하게 ‘EQ900 리무진’에만 쓰고 있다.
▲트렁크에 실린 가죽 가방
기자는 GV80을 보고 벤틀리를 떠올리는 사례를 여럿 접했다. 하지만 현대차 디자인을 이끄는 두 수장이 모두 벤틀리에서 이직 후 처음으로 함께한 작품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 가까운 예로, 폭스바겐 출신 토마스 잉엔라트(Thomas Ingenlath)가 그려낸 요즘 볼보는 폭스바겐 모델들과 상당히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