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의 발전은 눈부시다.
불과 50여 년 만에 자동차 생산량 세계 5위를 2005년부터 10년 넘는 기간 동안 유지했던 국가가 되는 믿어지지 않는 발전을 했기 때문이다. 2차대전 이후에 자동차 산업을 일으켜서 이처럼 글로벌 규모로 성장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우리나라는 1975년에 고유모델 포니를 개발함으로써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고유모델을 개발한 나라가 됐고, 그 이후 고유모델 개발을 계속해서 오늘에 이른 것이다. 말레이시아와 터키 등도 각각 1980년대와 1990년대 중반에 고유모델 승용차를 개발했지만 그 이후로 이어지지 못했고, 10여 년 전에 아프리카 케냐의 자동차 메이커가 고유모델을 개발했지만, 체계적인 디자인 개발이라고 하기에는 한계가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쥬지아로의 디자인으로 나온 우리나라의 첫 고유모델 포니, 1975년
우리나라 최초의 고유모델 포니를 비롯해서 1990년대까지 국내의 각 메이커들이 개발했던 고유모델 중에는 이처럼 까다로운 디자인 개발 문제를 이탈리아의 거장 디자이너들의 손을 빌어 해결한 차종들이 다수 있다. 물론 ‘용병(?)’의 힘을 빌려 온 것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나라는 디자인 선진국의 노하우를 어깨너머로 배울 수 있었고, 그를 통해 1990년대 이후 우리나라의 자동차 디자인과 자동차 산업이 도약하는 계기가 됐던 것이다.
쥬지아로의 디자인으로 1982년에 등장한 포니2
볼륨감 있는 테일 게이트를 가진 포니2의 뒷모습
그런데 이렇게 우리나라의 자동차 디자인에 커다란 영향을 많이 끼친 이탈리아와의 연결은 우리나라의 자동차 디자인이 오히려 지리적으로 가까운 일본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 계기가 되면서, 오늘날에 와서는 일본과 우리나라의 자동차 디자인이 조형 감각에서 적지 않은 차이를 가지게 하는 밑거름이 됐다. 우리나라의 자동차 디자인에 많은 영향을 준 이탈리아의 디자이너는 대표적으로 죠르제토 쥬지아로 (Giorgetto Giugiaro, 1938~)와 그의 디자인 업체 이탈디자인 (ITAL DESIGN), 그리고 다른 디자인 전문 업체 베르토네(Bertone) 등이 있다. 이들은 같은 이탈리아의 국적을 가지고 있지만, 서로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다.
쥬지아로의 디자인으로 1983년에 등장한 스텔라
미래지향적 쐐기형 이미지의 에스페로
한편 대우자동차(현재의 한국GM)에서 1991년에 내놓았던 첫 고유모델 승용차 에스페로(ESPERO)는 이탈리아의 디자인 전문 카로체리아(Carrozeria) 베르토네(Bertone)에서 디자인되었다. 카로체리아 베르토네는 설립자 지오반니 베르토네(Giovanni Bertone; 1884~1972)의 아들 누치오 베르토네(Nuccio Bertone; 1914~1997)가 1952년부터 이끌었지만, 각 시기 별로 여러 수석 디자이너들에 의해 디자인이 이루어졌는데, 일필휘지(一筆揮之)의 직관적 조형감각으로 명성이 높다. 특히 베르토네의 유명한 걸작 람보르기니 쿤타치(Countach)의 미래지향적 디자인은 19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후반까지 베르토네의 수석 디자이너였던 마르첼로 간디니(Marcello Gandini; 1938~)에 의해 디자인되었다. 그런데 간디니 이전의 베르토네 수석 디자이너가 놀랍게도 쥬지아로 였다는 아이러니가 있기도 하다.
베르토네의 디자인으로 개발된 시트로앵 XM
대우의 에스페로는 C-필러까지 유리로 둘러싸인 디자인으로, 이 시기에 베르토네가 작업했던 시트로앵(Citroen)의 XM 모델과 동일한 흐름의 감각이다. 직선적이면서도 쐐기 형태의 차체와 라디에이터 그릴이 없는 노 그릴(no grill) 디자인, 그리고 C-필러까지 연장된 유리창 디자인의 에스페로는 그 시기에 최신의 유럽, 특히 이탈리아 감각의 디자인을 우리나라에 보여준 승용차였다.
1997년에 등장한 쥬지아로 디자인의 레간자
쥬지아로 디자인으로 2011년에 등장한 코란도C
코란도C의 모티브인 쥬지아로 디자인의 콘셉트 카 C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