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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 타고 떠나는 닛코·가와고에 여행

등록일2019.01.09 17:55 조회수5039



일본은 철도의 왕국으로 불린다. 일본에서 꼭 타봐야 하고, 타볼 수밖에 없는 교통편이 전국을 거미줄처럼 엮어놓은 철도망이다. 일본 여행의 시작점인 수도 도쿄를 가볼 만큼 가봤다면, 혹은 번화한 대도시가 조금 식상해졌다면 열차를 타고 도심을 벗어나보자. 창밖을 구경하며 한두 시간만 달리면 도쿄 시내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매력이 가득한 명소들이 기다리고 있다.


도쿄 도심에서 열차로 두 시간이면 닿는 닛코는 100년 전부터 유럽인들이 반한 곳이다. 고원지대의 아름다운 자연과 세계문화유산을 품은 이곳을 찾는 한국인은 아직 많지 않지만, 일본인과 유럽인으로 북적이는 대표적 인 관광지다.


주젠지 호수에서 바라본 난타이산


도쿄 동북쪽 아사쿠사 역에서 출발하는 도부철도의 '스페시아'(SPACIA). 이 열차는 운행한 지 40년이나 됐다고 하지만 낡았다기보다는 고풍스럽다는 느낌을 안긴다. 닛코시의 서쪽, 꼬불꼬불 고갯길을 올라가 닿는 고원지대는 깊숙하다는 뜻이 지명에 들어가 '오쿠 닛코'로 불린다. 


이곳은 해발 1천269m에 형성된 주젠지 호수를 품고 있다.  해발이 높은 덕에 한여름에도 시원해 메이지 시대(1868∼1912)부터 외국인들이 즐겨 찾는 피서지가 됐다. 일본 리조트 호텔의 원조인 가나야 코티지 인이 1873년 이곳에 문을 열었다.


닛코선 철도가 개통한 것은 1890년 이다. 이후 도쿄에서 하루 만에 갈 수 있는 피서지로 주목받으며 각국 대사관 별장과 호텔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닛코의 주젠지 호수를 남달리 사랑했던 외국인은 영국 외교관 어니스트 사토였다. 1872년 닛코를 처음 방문해 고향인 영국 레이크 지방을 떠올리게 하는 주젠지 호수에 반한 그는 1875년 닛코를 소개하는 영문 가이드북을 펴냈고, 1896년 호수 남쪽에 산장을 지었다. 


영국 대사관 별장 2층에서 보이는 주젠지 호수 풍경


영국의 여행가이자 지리학자인 이사벨라 버드도 사토의 초청으로 이 산장에 한 달 동안 머물렀다. 산장은 훗날 영국 대사관의 별장이 되어 2008년까지 이용됐다. 검은 색과 흰색으로 깔끔하게 단장한 별장의 2층 테라스에서 바라본 주젠지 호수의 풍경은 넋을 잃게 만든다. 한쪽에 마련된 카페에서는 스콘을 곁들인 홍차를 마시며 좀 더 여유로운 시간을 즐길 수 있다.


이탈리아 대사관 별장 1층 툇마루와 별채


영국 대사관 별장에서 나와 오솔길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가면 1997년까지 사용되던 이탈리아 대사관 별장이 나온다. 1928년 도쿄에서 활동하던 체코 출신 건축가 안토닌 레이먼드가 지은 이 별장은 삼나무 껍질과 나무판을 사용해 건물이 주변 환경과 자연스레 어우러지도록 했다. 


주젠지 호수의 맑은 물과 호반 풍경은 더없이 평화롭지만, 호수의 물이 빠져나가는 단 하나의 통로인 게곤폭포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물은 호수의 동쪽 끝 절벽에서 97m를 곧장 쏟아져 내린다. 


게곤 폭포


아케치다이라 로프웨이를 타고 해발 1천373m에 있는 전망대에 오르면 게곤  폭포 뒤로 주젠지 호수와 호수를 둘러싼 산과 호반의 마을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폭포와 100∼200m 거리를 둔 전망대에서는 바위 절벽에서 세차게 떨어지는 물줄기를 오감으로 느낄 수 있다. 상단 전망대에서 바위를 뚫어 설치한 엘리베이터를 타고 100m를 내려가면 용소 근처의 하단 전망대로 갈 수 있다. 이곳에서 물보라를 맞으며 올려다보는 게곤 폭포는 더욱 크게 다가온다.



도쇼구 요메이몬


닛코의 신사와 사원은 199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천태종 사원 단지인 린노지에는 에도 막부 3대 쇼군인 도쿠가와 이에미쓰의 무덤이 있다. 금박과 화려한 조각 등으로 더없이 호화롭게 꾸민 건물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한국의 절로 치면 대웅전 같은 가장 중요한 건물 안은 한참 동안 줄을 서야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붐빈다.


도쇼구 경내의 술통


기모노를 차려입고 도쇼구를 찾은 어린이들


닛코에서 꼭 먹어봐야 할 음식이라면 단연 '유바'(湯葉)를 꼽는다. 유바는 두유를 가열할 때 표면에 생긴 막을 걷어낸 것으로, 신사와 사원의 도시 닛코에서 많은 수행자가 먹었던 음식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실제 유바를 보기 전, '두유 껍질'이라는 설명을 들었을 때는 도저히 상상되지 않는다. 여러 겹 겹쳐진 유바의 끝을 잡고 들어 올리면 끊어지지 않고 찰랑거릴 정도로 탄력이 있다. 입에 넣으면 맛은 연두부처럼 부드럽지만, 훨씬 졸깃하다. 튀긴 유바는 두부를 얇게 썰어 튀긴 유부와 얼추 비슷하다.


생유바


도쿄도에서 서북쪽으로 인접한 사이타마현의 가와고에시는 에도 시대의 모습이 남아있어 '작은 에도'(고에도)라 불린다. 한국에도 이미 들어와 있는 고에도 맥주가 바로 이곳의 특산물이다. 도쿄 부도심인 이케부쿠로 역에서 기차로 30분 남짓이면 도착하기 때문에 당일치기 여행으로 부담없이 다녀올 수 있다.


대화재 때 불에 타지 않고 남은 오사와가 주택


가장 대표적인 볼거리는 창고 형태의 전통 가옥이 모여 있는 구라즈쿠리 거리다. 일본의 전통 가옥은 목조가 보편적이어서 화재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1893년 대화재 때 비단 포목 거상이었던 오사와가 주택만 불에 타지 않고 남았는데, 그 집이 두꺼운 흙벽으로 지은 구라즈쿠리 건물이었다. 이후 새로 짓는 건물들이 구라즈쿠리 방식으로 지어지면서 전통 가옥 거리가 만들어졌다.



가와고에의 상징인 시계 종탑


가와고에의 상징으로 꼽히는 시계 종탑 도키노카네는 약 400년 전인 에도 시대 초기부터 있었다. 대화재 직후 재건된 현재의 시계 종탑은 여전히 하루 네 차례, 오전 6시와 정오, 오후 3시와 6시에 종을 울린다. 


고구마로 만든 간식


가와고에에서는 고구마가 많이 난다. 고구마로 만든 다양한 간식을 맛보며 걷는 것도 재미다. 전통 가옥 거리 뒤편으로는 막과자, 엿, 전병 등 전통 과자를 파는 가게들이 모인 가시야요코초(과자골목)도 있다. 


가와고에의 가장 큰 전통축제인 가와고에 마쓰리는 10월 세 번째 주말에 열린다. 축제는 단 이틀 열리지만, 가와고에 축제회관에서 그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글 · 사진 한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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