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는 동서양을 잇는 독특한 매개체였다. 유럽인들에게는 동양의 신비를 전해주는 존재였고 교역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동서양 차를 배경으로 한 역사 속의 주인공이 되어 차와 티 푸드를 즐기는 홍차 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끝없는 녹색 차밭이 바다처럼 펼쳐있는 스리랑카. 머릿속에 그려지는 이런 이미지는 차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충분히 매료시킬 만하다. 스리랑카가 ‘차의 나라’라는 것은, 실론(Ceylon)이 1972년 이전까지 스리랑카의 국명이었다는 데서도 알 수 있다.
그랜드호텔 딜마 티 룸에서 만난 화이트티(오른쪽)와 홍차
‘빛의 도시’ 누와라 엘리야
‘빛의 도시’라는 뜻을 가진 누와라 엘리야는 이 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스리랑카 남동부 산악지대의 해발 1천 868m에 달하는 고지에 위치한 마을이다. 그만큼 가는 길은 험했고, 수도인 콜롬보에서 꼬불꼬불한 산길을 쉬지 않고 6시간은 달려야 도착할 수 있다. 마을을 향하는 차 안에서 실감한 차밭의 규모는 엄청났다. 차밭이 보이다가 폭포가 나타나고 다시 차밭이 나타나는 등 어쩌면 산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차밭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누와라 엘리야 시내에 위치한 그랜드호텔에 도착해서도 장관은 계속되었다. 호텔 창문 바깥으로 펼쳐진 모든 것,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전부 차밭이었기 때문이다. 식상한 표현일지 모르겠지만, 그야말로 ‘홍차의 바다’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렸다. 여기서 생산되는 홍차는 ‘실론 홍차의 샴페인’으로 불린다. 맛이 부드럽고 풍미가 넘친다. 전 세계 최고급 홍차의 60%가 이곳 누와라 엘리야에서 생산된다고 한다.
호텔을 찾은 이유는 바로 딜마(Dilmah) 차를 맛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딜마는 브랜드 이름으로 이곳에서 갖가지 차를 맛볼 수 있다. 가격도 그리 비싸지 않다. 한 잔에 350루피(약 2천 150원) 정도다.
'페드로'에서는 차 시음을 할 수 있다
티 팩토리 관람
지역마다 티 팩토리가 있다. 밭에서 따온 찻잎을 가공하는 공장이다. 상당수의 티 팩토리는 관람객들을 대상으로 공장 내부를 공개하는데, 한화로 2천원 정도를 내면 제작과정을 견학하고 차를 맛볼 수도 있다. 이름이 많이 알려진 맥우드 등의 티 팩토리는 마치 시장처럼 붐벼, 어쩌면 현지인들이 찾는 티 팩토리를 방문하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티 팩토리에서는 관람객들을 상대로 한 투어가 매시간 열린다. 팩토리 투어가 끝나면 차를 시음할 수 있다. 투어에 참여한 대부분의 관람객은 내부의 상점에서 차를 사기 마련이다. 줄을 서서 차를 사고자 했는데, 현지인 한 명이 유럽에서 온 가족에게 하는 얘기를 들으니 그럴듯하게 포장된 차를 사는 것보다 비닐봉지에 담긴 벌크로 된 차를 사는 편이 훨씬 저렴하다고 한다.
누와라 엘리야의 홍차는 차의 발색이 오렌지에 가까울 정도로 밝다. 우유를 넣어 마시면 마일드한 느낌으로 맛볼 수 있다. 깔끔한 맛이 누와라 엘리야산 홍차의 특징이다.
립톤의 창업자인 영국의 토마스 립톤이 매일같이 앉아 경치를 바라봤다는 곳에 가보려면 해뜨기 전에 출발해야 한다. 일명 ‘립톤 시트’(Lipton Seat)라고 부르는 이곳은 해가 뜨고 나면 안개가 몰려와 아무 것도 안 보인다고 한다. 립톤시트 정상에서는 단돈 60루피(약 370원)에 맛난 홍차를 맛볼 수 있다. 립톤의 본고장인만큼 누구든 한 잔 마셔볼 것을 권하고 싶다.
홍차는 잎 가공 방법에 따라 다양한 등급이 존재한다.
스리랑카 홍차의 역사와 종류
스리랑카는 오늘날 차와 관련된 모든 것을 관장하는 관청을 두고 이를 관리한다. 이를 차청(Tea Board)이라 한다. 콜롬보 시내에는 스리랑카 차청에서 직접 판매하는 상점이 있어 믿을만한 제품을 살 수 있다. 스리랑카 홍차는 고도에 따라 3가지로 나뉜다. 해발고도가 2천 피트(약 600m) 이하의 낮은 곳에서 생산되면 로우 그로운(Low Grown)이라 부른다. 이보다 높은 산간지대에서 생산되면 미디엄 그로운(Medium Grown), 4천 피트 이상에서 생산되면 하이 그로운(High Grown)이라고 한다.
홍차 종류는 잎 조각 크기와 분쇄 과정 등 다양한 기준으로 정하는데 가장 일반적인 기준은 차잎을 어떤 형태로 상품화하느냐다. 찻잎의 형태를 그대로 띤 것은 OP(Orange Pekoe)로 표기된다. OP는 차의 가장 연한 첫잎 바로 아래 부분을 채취한 것으로, 잎 모양이 그대로 말려진 형태다. 찻잎을 부숴서 만든 BOP(Broken Orange Pekoe)는 현지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유통되는 차로 물을 부으면 OP보다 빨리 우려진다. BOPF(Broken Orange Pekoe Fannings)는 BOP보다 입자가 더 작아 밀크티를 만들어 마시기 가장 적당하다. 이보다 더 가는 입자는 ‘더스트(Dust)급’으로 찻잎을 두 번 갈아서 조금만 우려도 강한 맛을 낸다. 현지인들은 대체로 강한 맛을 선호한다고 한다.
글 · 사진 성연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