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기생충' 캐릭터 포스터 [사진 출처=CJ엔터테인먼트]
개성 강한 캐릭터의 향연이 돋보이는 영화 '기생충'
오늘은 박 사장의 딸인 '다혜'(정지소 분)의 시선에서
영화를 바라보고자 합니다.
영화 '기생충' 스틸컷 [사진 출처=CJ엔터테인먼트]
영화 속 두 가족의 기묘한 인연은
기택(송강호 분)의 아들 기우(최우식 분)가
가짜 명문대생 행세를 하고,
다혜에게 영어 과외를 하면서 시작이 되는데요.
즉, '다혜'라는 캐릭터는
두 가족을 연결해주는 연결고리로 볼 수 있습니다.
영화 '기생충' 스틸컷 [사진 출처=CJ엔터테인먼트]
영화는 시종일관
기택의 집과 박 사장의 집을 대비시킵니다.
기택의 집은 반지하이며,
가족은 비좁은 공간에서 뭉쳐 살기에
의도치 않게 활발한 의사소통이 이뤄집니다.
박 사장의 집에 들어가겠다는 계획을 세울 때도
온 가족이 한마음으로 단합했죠.
영화 '기생충' 스틸컷 [사진 출처=CJ엔터테인먼트]
반면, 박 사장의 가족은 각자 개인 공간을 소유합니다.
이는 가족 개개인의 자아가 독립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박 사장 부부는
엉뚱한 행동만 반복하는 아들 다송(정현준 분)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고
추측만 할 뿐 입니다.
다혜의 경우는 가족의 눈을 피해
자신의 방에서 과외 선생인 기우와 키스를 합니다.
이때, 다혜의 사랑을 향한 욕망은 개인의 것이지,
가족 공동의 욕망이 아닙니다.
이러한 점을 비추어 보았을 때,
'기택의 가족=공동체'이며,
'박 사장의 가족=독립된 개체'로 볼 수 있습니다.
박 사장 부부는 금슬은 좋지만,
자신의 체면이 구겨질 일이 생기면,
서로에게 솔직하게 의사소통을 하지 못합니다.
기택의 가족은 이러한 점을 이용해서,
박 사장의 대저택에 기생하기 시작합니다.
영화 '기생충' 스틸컷 [사진 출처=CJ엔터테인먼트]
가족 간의 진정한 소통이 단절된 집에서
다혜는 가장 고립된 인물입니다.
박 사장의 부부는
손이 많이 가는 막내 다송만을 챙깁니다.
그렇기에 부모님에게 있어서 다혜는 언제나 뒷전이고,
그녀는 이에 대해 상당한 불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남동생 다송이 야식으로 준비한 짜파구리를 먹지 않자,
엄마 연교(조여정 분)은 남은 짜파구리를
가사 도우미나 남편에게만 먹일 생각을 합니다.
다혜는 자신도 짜파구리를 좋아하는데,
어떻게 자기에게 먹겠냐고 안 물어볼 수 있냐면서
엄마에게 막 화를 내지만,
가족들 중에 그녀의 분노에 공감해주는 이는 없습니다.
이 대목에서 일부 관객들은
'혹시 다혜가 친딸이 아닌가?'
하고 반전을 예상했을 겁니다.
(워낙 반전이 많은 영화다 보니 의심병이 생기게 되더라고요;;)
그렇다면 다혜가 친딸이 맞다고 하면,
영화는 그녀가 가족 내에서 고립되어 있음을
왜 끊임없이 강조하고 있는 걸까요?
영화 '기생충' 스틸컷 [사진 출처=CJ엔터테인먼트]
집에서 고립되어 있던 다혜 앞에,
어느 날 새로운 과외 선생인 기우가 나타납니다.
다혜는 영어 문제를 풀다가 어려움을 겪는데,
이때 기우는 다혜의 손목을 잡아 맥박을 살핍니다.
그녀가 문제를 풀면서 불안해하고 있다는 걸 간파한 거죠.
다혜에게 있어서
기우는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알아봐 준 인물입니다.
즉, 자신과 진정한 소통을 하려고 한 거죠.
그렇기에 사람과의 소통에 굶주린 다혜가
그에게 사랑에게 빠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영화 '기생충' 스틸컷 [사진 출처=CJ엔터테인먼트]
다혜가 누군가 자신의 감정을 알아주길 바란다는 건,
그녀의 일기장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다혜의 일기장은 침대 옆 바구니에 모아져 있습니다.
보통 사춘기 소녀라면 일기장을
안 보이는 곳에 꼭꼭 숨기거나
자물쇠와 같은 잠금장치를 걸 텐데 말이죠.
이는 가족이 다혜에게 애당초 관심이 없기에
일기장이 오픈된 공간에 있어도
아무도 안 읽을 거라고 생각해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
아마 다혜는 자신의 속내가 적힌 일기장을
누가 훔쳐 읽어줬으면 해서
일부러 일기장을 눈에 띄는 공간에 놓았을 겁니다.
영화 '기생충' 스틸컷 [사진 출처=CJ엔터테인먼트]
그렇기에 가족과 함께 몰래 대저택에 들어간 기우가
다혜의 일기장을 손에 넣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사실 기우에게 있어서 다혜와의 사랑은
계획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생존을 위해 박 사장의 집에 기생하겠다'라는
가족의 계획에 따른 행동이 아니었죠.
기우가 다혜의 일기장을 읽으면서
그녀의 진심과 소통하려는 순간,
기우의 가족은 둘 사이에 사랑이
싹트고 있다는 걸 눈치챕니다.
이때부터 기우의 가족은 김칫국을 마시면서
아들과 다혜가 결혼해 박 사장과 사돈 맺을 걸 상상하죠.
그렇게 가족의 신분 상승 욕구는 증폭됩니다.
기우 역시 이 시점부터는
다혜와의 사랑을 계획하기 시작하죠.
영화 '기생충' 스틸컷 [사진 출처=CJ엔터테인먼트]
대저택을 손에 넣겠다는 욕망을 품은 기우는
여동생 기정(박소담 분)에게
"이 집에 살고 싶다면 어떤 방을 쓰고 싶냐"고 묻지만,
기정은 그 자리에서
자신이 원하는 방을 고르지 못합니다.
이들은 '대저택을 손에 넣겠다'라는
가족 공동의 욕망은 지니고 있지만,
'자신의 방을 손에 넣겠다'라는
독립된 개체로서의 욕망은 없는 거지요.
기생충에게 있어서 계획은 단 하나입니다.
"생존"
그것은 '기생충'이라는 집단 전체의 목적이지,
개개인의 욕망은 아니지요.
관객이 '기생충'이라는 존재에
씁쓸함을 느끼는 이유는,
단순히 경제적 궁핍함뿐만 아니라,
이들이 '생존'에만 집착하게 되면서
자아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영화 후반부에서
기우는 자신이 지닌 유일한 목표였던 대입을 포기하고
가족을 위해 돈을 벌겠다는 욕망만을 품으며,
자아실현을 완전히 포기하고 맙니다.
영화 '기생충' 스틸컷 [사진 출처=CJ엔터테인먼트]
반면, 다혜는 시종일관 개인의 욕망에만 충실합니다.
부모님이 아들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 연 파티에서도,
그녀는 남몰래 기우와 키스를 합니다.
이때, 다혜는 기우가
자신에게 집중하지 않다는 걸 알고는 삐칩니다.
자신과 소통을 거부한 사실에 화난 거죠.
그러자 기우는 파티를 즐기는 사람들을 보며
'나도 이곳에 어울리냐'면서
다혜에게 질문하지만,
그녀는 갸우뚱한 표정을 짓습니다.
다혜가 아직 나이가 어린 탓도 있지만,
풍족한 환경에서 어려움 없이 자란 그녀가
'박탈감'이라는 감정을 이해할 리가 없었죠.
이렇게 둘 사이의 진정한 소통은 단절되고 맙니다.
영화 '기생충' 스틸컷 [사진 출처=CJ엔터테인먼트]
영화를 '소통'이라는 키워드로 해석하면,
다혜 역시 일종의 '기생충'으로 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자신에게 결핍된, '타인의 관심'이라는 양분을,
기우에게 정신적으로 기생해서 얻어내려고 했으니까요.
영화를 보면서 우리 사회의 빈부격차의 단상에
씁쓸한 감정을 느꼈던 관객들은,
부잣집 아가씨가 가난한 집 아들에게 매달리는 걸 보면서
잠시나마 속이 후련했을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다혜가 기생하는 방식을 보면,
고액 과외를 통해서 기우와의 만남을 주선하거나,
호화로운 홈 파티에 기우를 초대합니다.
즉, 자신이 지닌 재력의 힘을 활용하고 있는 거죠.
아마, 앞으로도 다혜는 인생에서 결핍된 게 있어도
돈의 힘으로 간단히 손에 넣을 수 있을 겁니다.
영화 '기생충' 스틸컷 [사진 출처=CJ엔터테인먼트]
박 사장의 가족 중에서
관객이 연민을 느낄 수 있는 캐릭터 '다혜'.
그녀가 박 사장의 친딸이 진정 맞다는 가정하에,
영화가 그녀의 고립을 강조한 이유는,
기생충 가족에게 대저택의 문을 열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기 위함일 겁니다.
나중에 가서 기생충 가족은
그녀를 며느리로 들이는 상상을 하며
신분 상승 욕구를 강화하기도 했죠.
또한, 다혜가 지닌 '사랑'이라는 욕망은,
두 가족의 차이가 경제력뿐만 아니라,
'개개인 자아의 독립 여부'에도 있다는 걸 보여줍니다.
영화 '기생충' 공식 포스터 [사진 출처=CJ엔터테인먼트]
영화 '기생충'은 다양한 캐릭터가 나오는 만큼,
어떤 캐릭터의 시선에서 보느냐에 따라서
내용 해석도 다양하게 나올 수 있습니다.
영화를 보고 자신만의 최애 캐릭터를 발견했다면,
그 인물의 시선에서 영화를 바라보는 것도
큰 즐거움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