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출처 : 구글이미지]
샤넬의 영원한 수장 '칼 라거펠드'는 언제나 하나로 묶은 머리와 선글라스가 트레이드마크인데요.
이제는 우리 곁을 떠난 칼 라거펠드의 생과 그가 탄생시킨 제품들을 알아보며
샤넬의 이야기를 마무리 지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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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라거펠드는 1938년 독일 함부르크에서 태어났습니다.
*서류상으로는 1933년생이지만 본인은 1938년도에 태어났다고 하네요. 본인의 말을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또래 남자아이들처럼 전쟁사보단
패션 사와 패션 잡지에 유난히 관심이 많았다고 하는데요.
[사진출처 : 나무위키]
1952년, 열네 살이 된 칼은 패션의 본고장 파리로 가게 됩니다.
당시 파리는 패션의 황금기라고 할 만큼 명품과 유행이 넘쳐났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평화가 찾아오자 상류층의 여성들은
부티크를 찾기 시작했기 때문인데요.
*이때 지방시와 발렌시아가, 발망이 크게 인기였다고 합니다.
파리의 황금기를 느끼며 패션을 알아가던 어느 날,
1955년 신인 패션 디자이너 콘테스트가 열립니다.
엄청난 수의 디자이너 지망생들이 참여했고 그 열기는 굉장했었는데
당시 심사 위원들은 지방시와 발망, 자크 파트였다고 합니다.
(왼)위베르 드 지방시 , (오)피에르 발망 [출처 : 제니스타일, 네이버블로그 misstwinkle]
어마어마한 심사위원들 덕분에 열기는 뜨겁다 못해 폭발할 지경이었다고 하는데요.
대회에서 칼 라거펠드는 여성코트 부분에서 1등,
드레스 부분에선 이브 생 로랑이 우승을 차지했다고 합니다.
*이브 생 로랑은 후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생로랑이란 브랜드를 설립하게 됩니다.
[출처 : 네이버블로그 pd97134]
콘테스트 이후 발망의 부티크에 스카우트 되면서 패션에 뛰어들게 됩니다.
몇 년간 발망에서 어시스턴트로 일하고 있을 때 장 파투에서 스카우트 되어
스무 살의 나이에 장 파투의 수석 디자이너가 됩니다.
하지만 몇 년 지나지 않은 1963년, 일에 싫증을 느낀 칼 가거펠드는 프리랜서를 선언합니다.
프리랜서가 된 칼 라거펠드는 아주 바쁜 삶을 보내게 되는데요.
프랑스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영국, 독일 등 다양한 국가와 마리오 발렌티노, Tepetto, Tiiani 등 브랜드에서 활약합니다.
끌로에 수석 디자이너 당시 탄생한 의상[출처 : 네이버 블로그 jongddee]
또, 1965년에는 끌로에의 액세서리 라인을 디자인을 시작으로 74년에는 끌로에 수석 디자이너와
펜디 디자이너 당시 탄생한 의상[출처 : 네이버 블로그 jongddee]
펜디의 더블 F 로고와 모피 라인을 디자인하며 패션계를 누비고 다녔습니다.
끌로에와의 관계는 칼이 샤넬로 옮기기 전까지 약 20년간 지속하며 지금의 끌로에가 있게
발돋움을 해주었습니다.
*항간에는 각기 다른 브랜드에 맞게 색다르게 디자인하는 칼 라거펠드의 몸은 여러 개라는 말이 있을 정도라고 했을 정도였다네요.
칼 라거펠드가 재해석 시킨 2.55백[출처 : 구글 이미지 ]
샤넬 2014 S/S [출처 : 네이버 블로그 dud_2233 ]
1982년, 샤넬의 역임이 공식적으로 선언되며 샤넬의 상징인 2.55백과 트위드 자켓에
샤넬의 로고를 활용해 부착하고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아이디어로 샤넬을 크게 성장시켰습니다.
그리고 2019년 2월 19일 그는 앓고 있던 췌장암으로 19 FW 샤넬 패션쇼를 준비하다가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일한다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 걸 할 때나 하는 말이다.
당신이 진정 좋아한다면 그것은 더이상 일이 아니다.
-칼 라거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