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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광의 빛과 그림자 담아낸 집념-

등록일2022.07.29 15:02 조회수9187










<카메라와 서치라이트를 차고 막장에 들어가는 김재영 교수>










석탄산업 흥망성쇠 고스란히 기록해낸 史官


태백시 소도동에 위치한 태백체험공원은 폐광된 함태탄광 위에 조성된 탄광 역사 현장학습관이다. 샤워장으로 사용되던 건물 2층에 광부들이 사용하던 각종 소품과 사진들이 실감 나게 전시돼 있다. 이곳 전시물은 석탄산업 역사문화 기록자로 활동 중인 김재영 한양대 미래인재교육원 레저스포츠 주임교수가 40여 년 열정을 녹여낸 살아있는 유산이다.


탄광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광부들이 석탄을 캐는 막장에 도달하려면 입구에서 지하 몇 ㎞를 들어가야 하고 검은 탄가루를 뒤집어써야 하는 일이다. 현장에서는 광부가 아니면 접근이 허용되지 않고 들어가더라도 지하에서 도사리는 위험을 오롯이 감수해야 한다. 


그래서 국내에서 탄광 사진 전문가는 손에 꼽을 정도다. 이런 험지 중 험지, 탄광에서 김 교수는 40년 넘게 사진으로 현장을 기록해 왔다.김 교수는 갱내에서 사진을 찍으면서 열악하고 고된 작업환경 속에서 우리나라 에너지 산업에 기여하는 ‘산업 영웅’ 광부들의 모습을 기록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꼈다고 한다. 





<폐광된 탄광에서 수집한 광부들이 사용하던 장비>






석탄 산업은 1960년에서 1980년대 중반까지 전성기를 누렸다. 국내 생산이 가능한 지하자원을 활용해 국가기간산업을 뒷받침할 발전 에너지를 생산하고 국민 생활 연료로도 쓰인 중요한 에너지 산업이었다. 그러나 1989년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으로 감원·감산이 이어지면서 쇠퇴의 길로 접어든다. 생산 호황을 누리던 전국 탄광들이 문을 닫고 현재는 대한석탄공사가 운영 중인 강원 태백 장성과 삼척 도계, 전남 화순, 삼척 도계읍에서 민간이 운영하는 경동상덕광업소 등 4개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지구온난화 주범인 탄소배출 문제와 대체에너지로 급선회하는 조치들이 진행되면서 대한석탄공사 산하 세 곳도 2025년 까지 순차적으로 폐광하기로 지난 3월 노조와 합의했다. 


김 교수는 이런 석탄 업계의 흥망성쇠를 사진으로 기록하고 자료를 수집해 온 대한민국 석탄 산업의 산증인이다. 김 교수의 탄광 사진 입문은 석탄 산업 번성기였던 198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태백에서 은행원으로 탄광 회사를 담당하면서 관계를 맺었다. 이런 친분으로 접근이 어렵던 탄광에서 사진 촬영을 허락받게 됐다. 주변에서 한두 번 하다가 그만둘 것으로 생각했던 일을 40년 넘게 이어오며 현재에 이르렀다.  김 교수의 사진에는 지금은 볼 수 없는, 전국 탄광 곳곳에서 촬영한 광부들의 고된 여정이 고스란히 기록돼 있다. 탄광 사고와 진폐 환우의 모습은 보는 이들의 가슴을 저리게 한다.






<막장으로 들어가기 전 옷을 갈아입는 광부들의 모형전시물>






<광부들이 사용하던 장화와 안전모>






<광업소 사무실과 막장에서 사용하던 물건>










석탄 가루 묻은 자료 수집에도 열정 가득


탄광이 폐광하면 신속히 환경을 원형 복원하려고 기존에 사용되던 자료들은 폐기물로 처리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게 보통이다. 김 교수는 1990년 폐광 업소를 방문했을 때 탄광 자료와 장비들이 아무렇게나 방치된 것을 보고 수집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폐광 소식을 접하면 거리를 불문하고 달려가 탄광 자료를 수거했다. 희귀 자료는 골동품상이나 해외에서 구매하기도 했다. 


수집품은 사무직원들이 사용하던 자료도 있지만, 광부들이 채탄 현장에서 사용하던 작업복이나 방진 마스크와 장화, 안전등, 갱도를 나와 몸을 씻을 때 사용하던 세면도구 등 탄가루가 잔뜩 묻은 물건도 많다. 일견 희소성이 없어 보이는 물건도 김 교수는 광부들의 손때가 묻어 있어 소중히 수집했다. 


하지만 일반인 눈에는 쓰레기일 뿐이고 광업소 직원들조차 외면할 정도로 푸대접을 받는 물건들이었다. 그러니 산더미 같은 잡동사니를 접한 김 교수 가족이나 주변의 반응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주변의 편견을 극복하고 소신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는 안다. 그런 물건들이 현재는 다시는 구할 수 없는 석탄산업 역사자료가 되다 보니 전시 관계자들은 김 교수의 안목이 50년은 앞섰다고 말한다.


전시장에 있던 함태 탄광은 1954년 민영 탄광으로 개광한 뒤 1993년 태백에서 가장 먼저 폐광됐다. 석탄을 캐던 함태수갱이 전시장과 연결돼 있다. 한여름에도 15℃ 정도의 서늘한 바람이 나오는 갱도를 따라가면, 해발 700m가 넘는 표고에서 0m까지 지하를 수직으로 개발한 수직갱도에 사용하던 권양기(리프트) 두 대와 권양기실이 녹슨 채 자리하고 있다. 이 수직갱도는 1972년 4월에 착공해 1981년 9월 완공됐다. 당시 56억여 원이라는 큰 비용이 투입된 시설이다. 권양기는 녹이 슬었지만, 현장학습관 뒤편 산 중턱에 있는 건물의 권양기 시설과 함께 여전히 그 위용을 느낄 수 있다






<폐광된 함태탄광의 수직갱도에서 사용하던 권양기>






<태백 철암탄광역사촌>






<태백체험공원의 함태수갱>






<함태탄광 권양기 시설>











성급했던 탄광 흔적 지우기 이제는 보존 인식 확산


김 교수의 사진과 자료는 태백석탄박물관에도 전시되고 있다. 지금은 폐광된 탄광 곳곳에서 촬영한 광부들의 노동 현장의 고단함을 사실적으로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다. 온몸이 땀에 젖은 작업복을 입고 검은 막장 휴게소에서 낮잠을 자는 광부들의 모습은 고된 노동의 강도가 그대로 전해오는 듯하다. 국가 에너지산업 발전 뒤에 육신이 사그라지면서까지 피땀을 흘린 석탄 영웅들의 아픈 역사도 기억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기에 충분해 보인다.


김 교수가 수집품 중 가장 애착을 갖는 건 1959년 어룡 탄광으로 개광해 2020년 태백 탄광으로 폐광하기까지 채광했던 탄광 막장을 그린 도면이다. 양가죽 위에 그려진 이 막장 도면은 우리나라 석탄 산업의 ‘실록’이라 할 수 있다. 


여러 탄광이 문을 닫으면서 석탄산업의 중심지인 태백에도 현재 영업 중인 철암지역을 제외하면 석탄산업의 역사를 간직한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당시의 흔적이 급속히 사라진 오늘, 태백 사람들은 석탄산업의 흔적 지우기가 성급했다고 후회한다. 그래서 김 교수가 촬영한 사진과 수집 자료는 그 의미를 더한다. 머지않아 현재 영업 중인 탄광이 문을 닫으면 관련 자료가 없어지지 않도록 보존해야 한다는 인식이 퍼지는 점은 그나마 다행이다.


우리나라 석탄산업 노동자들은 1960~70년대 파독 광부로서 어려운 시기에 외화벌이에 앞장섰고 국내 에너지 산업에 크

게 기여해 왔다. 탄광이 사라진다고 해서 그들의 노력과 희생이 잊혀서는 안 된다. 그 흔적을 남기려고 노력 중인 김재영 교수와 석탄산업 관계자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1998년 보은 마로 탄광 막장에서 잠자는 광부들/ 김재영 제공>





<1994년 삼척 한양 탄광의 갱구김재영 제공>






<1995년 보은 마로 탄광에서 갱목을 나르는 광부김재영 제공>





<태백 탄광에서 61년간 채광한 탄광 막장을 그린 도면





<1992년 태백 보성 탄광에서 도시락 먹는 광부들 김재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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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연합이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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