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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멸치 덮밥과 바닷마을 다이어리-가마쿠라를 가다

등록일2022.08.02 14:26 조회수2071





여행일기

잔멸치 덮밥과 바닷마을 다이어리

가마쿠라를 가다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시라스동을 주문했다. 시라스동은 이 섬에서 잡히는 잔멸치를 공깃밥에 얹어 먹는 덮밥이다. 시계를 보니 오후 3시가 넘었다. 여기 오는 길에 가마쿠라(鎌倉) 앞 푸른 바다에 정신을 팔다 오느라 늦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만든 영화의 주인공이 제75회 칸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는 소식에 제일 먼저 떠오른 건 ‘시라스동’ 이다. 시라스동을 놓고 식탁에 둘러앉아 맛있게 먹던 네 자매의 행복한 모습이 담긴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가 가마쿠라로 떠나게 했다.


글·사진 정동헌





<가마쿠라에 온 여행자들은 바다 사진을 찍으며 여행일기를 쓴다>









도쿄 신주쿠역에서 기차를 타고 1시간 남짓이면 사무라이 고장이었던 가마쿠라에 도착한다. 에노시마 섬(江の島)에 가려고 도착한 곳은 가마쿠라 역이다. 가마쿠라는 바다마을이다. 마을의 집들과 거리는 예쁘다. 해변은 검은 모래가 펼쳐져 있고 하늘엔 솔개가 노닌다.


가마쿠라는 쇼군(將軍) 최초 무사 정권인 바쿠후(幕府)가 있던 시절 실질적인 수도였다. 바다를 통해 송나라와 해상무역으로 인쇄술을 가장 먼저 받아들였다. 그 흔적이랄까 지금은 도쿄와 가까운 지리적 이점과 빼어난 자연경관으로 전원생활을 즐기는 부촌이다. ‘무기 창고’란 의미의 가마쿠라가 문학과 예술의 도시이며 삶의 여유를 즐기기 좋은 곳이 된 건 아이러니하다. 날씨 좋은 날 해변에 서면 바다 넘어 후지산이 보인다. 


가마쿠라 역에서 노면전차를 타는 순간 이미 엉덩이는 들썩이며 눈은 창밖 풍경에 매료된다. 노면전차 에노덴(江ノ電)은 가마쿠라 역과 10km 떨어진 후지사와역까지 해안선을 따라 바다마을을 연결한다. 일일 프리패스 티켓으로 15개 역을 오가는 중간에 원하는 역에서 내려 가마쿠라의 명소를 구경하고 다시 탈 수 있다. 고즈넉한 마을 집들 사이를 달리는 에노덴은 마주하는 소소한 풍경에 낭만 열차가 되고, 해안선을 따라 펼쳐지는 푸른 바다에 바다열차가 된다. 


가마쿠라 역을 출발해 세 번째 역인 하세(長谷) 역에서 내려 도로를 따라 10여 분 걸어가면, 일본에 현존하는 3대 불상 중 하나인 고토쿠인의 가마쿠라 대불을 만날 수 있다. 가마쿠라의 상징인 대불은 원래 목조로 건축된 불상이었다. 태풍으로 소실돼 1252년 높이 11.3m, 무게 121t의 웅장한 청동 불상으로 다시 제작됐다. 불상 내부가 궁금하면 별도 입장료를 내고 커다란 불상 안으로 들어가는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 


이곳 명물인 타코센베이는 작은 문어를 반죽과 함께 통째로 넣어 기계로 납작하게 눌러 문어 형태가 그대로 남은 전병이다. 짭짤한 문어 맛에 고소하면서 바삭한 센베이 맛이 조화롭다. 하늘을 나는 솔개가 언제 낚아채어 갈지 몰라 사방경계를 해야 한다. 사람을 직접 공격하진 않지만, 센베이를 낚아채려 급강하하는 솔개의 날카로운 발톱에 손을 다칠 수도 있다. 전병을 먹으며 다시 전차에 올라탄다








<청동불상 앞에서 향을 피워 기도를 하는 노파/ 문어가 원래 형태 그대로 눌린 타코센베이>






<일본최고 불상으로 꼽히는 국보 가마쿠라 대불>









가마쿠라 최고 해변이 있는 시치리가하마(七里ヶ浜)역이다. 방파제 위 카페 퍼시픽 드라이브인 앞 주차장은 가마쿠라 해변의 석양을 감상하기에 최적의 장소다. 바다를 쳐다만 보고 있기엔 못내 아쉬워 신발을 벗고 바다에 발 담그며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한껏 마셔본다. 파도를 타고 있는 서퍼들을 보니 ‘인간은 세 분류로 나뉜다. 산자, 죽은 자, 그리고 바다로 나간 자’란 말이 떠오른다. 사계절 내내 눈부신 가마쿠라 앞바다는 서퍼들의 성지다. 한겨울에도 온난해 파도타기에 좋다. 2020도쿄올림픽 요트경기에 참가한 선수들이 이곳에서 레이스를 펼쳤다.


노면전차가 가마쿠라고코마에(鎌倉高校前) 역에 도착하기 전부터 심장 박동이 빨라진다. 청춘만화로 인기를 끌었던 ‘슬램덩크’ 속 전차 안내방송에서 “능남고교 앞”이라고 하던 배경이 가마쿠라 고교역이다. 만화 주인공 ‘강백호’가 책가방을 어깨에 둘러멘 채 바다를 응시하며 서 있던 철길 건널목은 관광객들이 에노덴이 지나가는 순간을 배경 삼아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번잡하다. 


역에서 교복을 입은 가마쿠라 고교생들을 보며 슬램덩크를 떠올리는 재미가 쏠쏠하다. 가마쿠라 고교 앞 건널목에서 헤어지기 싫은 마음을 돌리고, 다시 에노덴 열차에 오른다. 









<가마쿠라 고교 역 건널목에서는 누구나 ‘강백호’가 돼본다>






<먹기 아까운 에노덴 그림 과자>








<에노덴 운전석 바로 뒤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엉덩이를 들썩이게 한다>








에노시마역에 도착했다. 이곳을 배경으로 한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아름다운 것이 아름답다 느낄 수 있는 게 행복임을 일깨우는 영화다. 네 자매가 한가족이 되어 시라스동을 먹는 장면은 저마다 아픈 상처를 입은 사람들끼리 서로 보듬어주며 담백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시라스동을 먹으려고 가마쿠라와 다리로 연결된 에노시마섬으로 들어간다. 잔멸치 덮밥을 먹을 수 있는 곳은 여기 밖에 없다. 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청동으로 만든 도리이(鳥居)가 눈길을 끈다. 에노시마 신사는 섬에 흩어졌던 신사 세 곳을 하나로 모았다. 어업과 해운의 신들을 모신 곳이다. 신사 입구는 기념품 가게와 관광객으로 북적인다. 재물복을 주는 신을 모시고 있어 많은 일본인이 찾는다. 섬 한편은 관광지이지만 다른 한편은 조용한 주택가다. 관광지를 피해 섬마을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다가 고양이를 만났다. 손을 흔들며 마중을 나온 것 같다. 


비교적 쉽게 찾은 음식점 분샤쇼쿠도(文佐食堂)에 들어서면서 메뉴판은 보지도 않고 시라스동을 주문했다. 오래된 느낌의 이 식당은 영화 속 자매들이 어릴적부터 드나들던 곳이다. 영화에선 우미네코(海苗. 바다고양이)란 식당간판을 달았다.

시라스동을 맛보는 건 처음이었다. 한 손에 밥공기를 들고 나무젓가락으로 작은 멸치를 맛본다. 비린내가 없다. 쪄서 반 건조한 잔멸치는 부드러운 식감이다. 같이 나온 바지락미소국은 시원하고 구수하다. 집밥과 섬 바다 맛이 합쳐진 담백하고 아름다운 바다의 맛이다.


잔멸치 위에 간장을 살짝 얹어 시라스동을 먹고 식당을 나오다가 영화 중 대사가 생각났다. “세상이 달라 보여… 미치게 지겨운 일도 견딜 수 있겠어.” 밥심으로 세상을 사는 것이다. 좋은 여행은 그곳에서 맛있게 먹었던 음식을 행복이란 이름으로 기억한다. 






<잔멸치 덮밥은 아름다운 바다 맛이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영화 포스터>







<영화 속 ‘바다고양이 식당’으로 나온 동네 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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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연합이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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