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버스토리
에메랄드빛 사이판 해변 여행이 돌아왔다
코로나 확진자가 다시 증가 추세로 돌아섰지만, 올여름 해외여행에 대한 관심은 그동안 굶주림을 보상받기라도 하려는 듯 무척 뜨겁다. 그렇다고 멀리 가기는 아직 부담스러운 게 현실. 그래서 주목받는 곳이 사이판과 괌 등 해외 근거리 휴양지다. 비행시간이 4시간 남짓으로 짧아 거리와 비용 등에서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글·사진 성연재 기자-
<산 이시드로 비치 파크의 붉은 석양>
근거리 해외 휴양 하면 떠오르는 사이판
에메랄드빛 바다로 유명한 사이판은 가족 단위 여행객의 사랑을 받는 곳이다.
사이판은 팬데믹 기간 싱가포르와 함께 한국과 트래블 버블(Travel Bubble·여행안전권역)협약을 맺고 비교적 자유롭게 갈 수 있는 2대 여행지로 사랑받아왔다. 특히 안전을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가족 단위 여행객들에게는 멀리 여러 곳을 다니는여행보다 근거리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사이판이 매력적이다.
<만세 절벽으로 향하는 길의 머스탱 컨버터블>
생각보다 시원한 남국
남국의 여름은 생각보다 시원했다. 그늘에 들어가니 시원한 느낌이 드는 게 후텁지근한 한국 날씨와 비교됐다. 연평균 기온을 찾아보니 28.9도다. 가장 더운 여름조차도 31도를 넘지 않는다. 어쩌면 한국처럼 매서운 겨울과 습하면서 무더운 여름이 없는 이곳은 사람들이 정착해 살기에 더 좋은 조건이 아닐까 생각해봤다. 그래서인지 사이판은 세계에서 가장 평온한 기후를 가진 곳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이처럼 살기 좋은 조건이다 보니 사이판이 있는 북마리아나 제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2천 년 전부터로 추정된다. 차모로족이 정착해 온 이 섬들은 15세기 스페인 사람들의 항해 중에 발견되면서 유럽에 알려졌다. 스페인과 독일의 지배를 거쳐 1차 세계대전 후 일본에 점령됐다. 이곳은 2차 세계대전 중인 1944년 미군이 사이판에 상륙하면서 미국 통치령이 됐다가 자치령으로 바뀌어 현재에 이른다.
사이판 공항에 내리자마자 나흘짜리 유심카드를 20달러에 샀다. 공항 오른쪽에서 기다리던 투어 가이드를 만나 숙소인 사이판 월드 리조트로 향했다. 거리 곳곳에는 불꽃 나무(Flame Tree)가 꽃을 피우고 있었다. 주황색 꽃이 마치 불꽃이 타는 듯한 느낌을 줘 얻은 이름이다.
<북마리아나의 대표 꽃인 플루메리아>
<불꽃 나무가 늘어선 도로>
<아기자기한 모습의 사이판 국제공항>
렌터카를 즐기는 괌 여행
남국의 여행지를 가는 여행자들에게는 서너 가지 로망이 있다. 그중 하나가 빨간색 또는 노란색 컨버터블을 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즐기는 것이다. 남국의 여행지에서 한국에서는 몰아보지 못했던 오픈카를 타고 다니는 호사를 누리고 싶은 건 당연할지도 모른다.
길거리 곳곳에서 관광객들이 타고 다니는 노란색 또는 빨간색 스포츠카들을만난다. 대부분 렌터카 회사에서 포드 ‘머스탱’ 컨버터블을 빌릴 수 있다. 리조트로 찾아온 렌터카 회사 직원에게 보험료 등을 지불한 뒤에 차를 인수했다. 햇살이 뜨거웠지만, 뚜껑을 열고 달렸더니 시원하기 그지없었다. 에어컨을 오래 쐬면 머리가 아픈 듯 느끼는 체질이라 청량감이 너무 반가웠다.
거리에 생각 외로 차량도 많지 않았고, 한국인 관광객 외에는 외국인의 모습도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가장 많은 인구가 거주하는 사이판의 인구 밀도는 약 378명/㎢로 서울시 인구 밀도의 43분의 1에 불과하다. 사이판 사람들이 서울 사람들보다 43배 넓은 공간을 누리는 셈이다. 미리 음악을 담아온 USB 메모리 카드를 차에 꽂았다. 미국 플루겔혼 주자 척 맨지오니의 ‘필스 소 굿’(Feels So Good)’을 들으며 차를 몰다 보니 해방감이 한껏 느껴졌다. 20여 분 달리다 보니 발아래 깎아지른 절벽의 비경을 마주친다. ‘만세 절벽’이다.
<죽 뻗은 도로를 시원하게 달리는 포드 머스탱 컨버터블>
한국인과 일본인 모두에게 슬픈 섬
사이판은 한국인에게 가슴 아픈 섬이다. 일제강점기 한국인 징용자들이 끌려와 희생당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만세 절벽(Banzai Cliff)은 제2차 세계대전의 뼈아픈 상흔이 남아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 수세에 몰린 일본군은 이 만세 절벽과 뒤돌아서면 보이는 ‘자살 절벽’에서 ‘천황 만세’를 외치며 뛰어내렸다. 안타까운 사실은 그 가운데 일본군의 총칼이 무서워 어쩔 수 없이 몸을 던져야 했던 한국인 징용자들이 섞여 있었다는 사실이다. 사이판은 일본인이나 한국인 모두에게 쓰라린 아픔을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자살절벽 위에는 일본인들이 세운 혼령비가 많다. 태평양 한국인 위령 평화탑은 만세 절벽 아래쪽에 있어 한국인 관광객들이 자주 들러 추모를 한다.
<아름답지만 슬픈 사연을 지닌 만세 절벽>
<아름다운 새 섬>
<태평양 한국인 위령 평화탑>
가족 다위 관광객 천국 '월드 리조트'
사이판의 여러 리조트 중 가장 주목받는 곳 중 하나가 한화호텔앤드리조트가 운영하는 ‘월드 리조트’다. “혹 바다 전망이 아니면 어쩌지?” 하는 걱정을 할이유가 없다. 259실 전 객실이 모두 ‘오션 뷰’이다. 놀이동산을 떠올릴 만큼 물놀이 시설이 잘된 워터파크가 있어 가족 단위 관광객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갖가지 종류의 풀장만 해도 다섯 개다. 파도 풀도 있고, 물이 차면 머리 위에서 대형 양동이가 쏟아지는 키즈 풀은 아이들이 좋아한다. 무엇보다 200m에 달하는 슬라이드인 ‘마스터 블라스터’ 와 2.5m 아래로 뚝 떨어지는 ‘블랙홀’ 시설이 가장 인기가 좋다.
<양동이에서 물폭탄이 떨어지는 키즈풀>
객실도 널찍했다. 월드 리조트에는 싱글베드 2개가 있는 ‘슈페리어룸’ 이외에도 더블베드가 2개 있는 ‘디럭스룸’도 80실이나 된다. 가족 단위 휴양객이 대부분이어서 싱글룸은 아예 없을 정도. 2층에는 인기 캐릭터인 ‘뽀로로’ 캐릭터 테마 방 10실이 있다. 뽀로로 객실은 인기가 많아 보통 한 달 전에 예약이 꽉 찬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뽀로로는 테마 객실 외에 1층 로비에도 상주한다. 무엇보다 데스크의 한국인 직원과 조식 뷔페에 포함된 다양한 한식메뉴도 반가웠다.
<리조트에서 망중한>
<뽀로로 캐릭터 테마 객실/ 로비의 뽀로로 캐릭터들>
<모든 객실이 오션 뷰>
"모든 세상이 불타는 듯" 사이판의 석양
현지인들이 자주 들러 바비큐를 하고 술도 한 잔 나눈다는 ‘슈가 덕’을 찾았다. 저녁나절 이곳에서 보는 석양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날은 왠지 구름이 잔뜩 끼어 석양을 못 볼 것 같았다. 그래서 슈가 덕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는 산이시드로 비치 파크를 찾았다. 서쪽에 자리 잡은 이 해변은 석양 감상에 최적의장소다.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 ‘서프 클럽’이라는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면서 석양을 즐기기에 그만이다. 주문하고 보니 좀처럼 나타나지 않을 것만 같던 석양이 시간이 지나면서 한층 붉어졌다.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이 없을 만큼 모두레스토랑에서 나와 휴대전화로 석양을 촬영하기 바빴다. 지금까지 만났던 석양 가운데 가장 멋진 것으로 기억될만했다.
<산 이시드로 비치 파크의 석양>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 서프 클럽/ 서프 클럽의 메뉴>
레포츠 천국 사이판
자연이 아름다운 사이판은 스노클링과 사이클링 등 다양한 레포츠의 본고장 중 하나로 꼽힌다. 사이판 본섬에서 10여 분만 나가면 투명한 맑은 물을 자랑하는 스노클링 천국이 있고,전 세계 스쿠버다이버들이 가고 싶어 하는 다이빙 스폿도 있다. 또 그림 같은 풍경을 즐기며 달릴 수 있는, 때 묻지 않은 사이클링 코스들이 우리를 기다린다.
<하늘에서 본 마나가하섬>
한없이 맑은 물 마나가하섬
아름다운 열대 바다색을 표현할 때는 보석 에메랄드에 빗대어 ‘에메랄드빛’이라는 수식어를 쓰는 경우가 많다. 색 말고 투명도, 그러니까 물이 얼마나 맑은지 나타내는 척도의 하나가 시야(Visibility)이다. 특히 스쿠버 다이버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인데, 시야가 좋을 때 쓰는 극상 표현이 있다. ‘수정같이 맑다’(Crystal Clear)는 말이다. 사이판은 이 두 표현을 모두 사용할 수 있는 바다를 지녔다. 바다색이 에메랄드빛인 데다 수정처럼 맑다.
특히 사이판 본섬 가라판에서 모터보트로 불과 15분만 달리면 이런 조건을 가진 해변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있다. 마나가하섬이다. 둘레가 1.5 km밖에 되지 않는 마나가하섬은 도보로 다녀도 충분하다. 아무도 입도하지 않은 섬에 먼저 들어와 이곳저곳 거닐다 도요목 제비갈매깃과 중 하나인 ‘블랙노디’ 한 마리를 만났다. 사람이 가까이 가도 도망가지 않았고 발 언저리에서 서성거려 친근함을 줬다.
<마나가하섬의 에메랄드빛 해변>
이곳이 특히 매력적인 것은 바로 스노클링 장소를 걸어서 입수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해변은 한동안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은 탓인지 키 작은 식물들이 해변을 뒤덮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벌써 자연이 복원된 듯한 느낌이다. 물속은 한없이 투명했고, 열대어들로 가득했다. 긴 주둥이로 유명한 ‘트럼펫 피시’ 등 다양한 열대어가 눈에 띄었다. 가까운 해변에서 산호를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이 놀라울 뿐이다.
동행한 투어 가이드는 많은 관광객이 찾으면서 훼손됐던 산호가 최근 많이 복구됐다고 했다. 어쩌면 팬데믹이 가져다준 순기능 중 하나가 아닐까 싶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물놀이를 하다 보니 배가 고프다. 화장실과 샤워 시설은 갖추고 있지만, 매점이 운영되지 않아 각자 준비해온 도시락 등으로 요기하는 경우가 많다. 햇볕을 피할 공간도 있어 피크닉 온 기분을 낼 수 있다.
<투명한 마나가하섬 수중>
<해변의 일광욕>
<피크닉 장소>
동굴 속 탐험 신기한 그로토
사이판 본섬 남동해안에는 절벽이 깎여 만들어진 해식동굴, 그로토(Grotto)가 있다. 사이판 최고의 다이빙 포인트인 이곳은 다이버들에게는 ‘세계 3대 동굴 다이빙 스폿’으로 알려져 있다. 천연 다이빙 풀에서는 수영 초보자도 안전 장비를 착용하면 누구나 스노클링을 즐길수 있다. 그로토 수중에서 보면 바다로 연결된 3개의 작은 수중 동굴에서 오묘한 푸른빛이쏟아지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실상은 깊은 절벽 길을 내려가야 하므로, 오가는 데 위험도 따르고 수심이 깊기 때문에 초보자나 개별 여행객의 경우에는 권하지 않는 곳이다. 다이버들은 동아줄을 잡고 수중으로 내려갈 수 있다. 그야말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시커먼 바닷물 속으로 들어가면 세 줄기 빛이 바다 쪽에서 쏟아지는 장면이 다이버들을 매료시킨다.
<다이빙 메카 그로토>
<수중에서 본 그로토/괌관광청 제공>
사이클링 성지 중 하나
웬만큼 스노클링을 즐겼으면 이제는 사이클링을 즐길 시간이다. 사이판은 알고 보면 사이클링의 천국이다. 마리아나 제도의 대표적인 스포츠 행사인 ‘헬 오브 더 마리아나’ 사이클 대회가 매년 열리기도 한다.사이판의 해안도로와 자살절벽, 새섬, 만세 절벽 등 약 100㎞ 구간에서 펼쳐지는 이 대회에는 해마다 수많은 해외 동호인들이 찾는다.
자전거를 따로 가져가기 힘든 여행자들은 섬 중심지인 가라판의 사이판 바이크 프로에서 대여할 수 있다. 이번에 사이클링을 체험한 곳은 사이판 골프클럽 앞의 ‘루트 30’ 도로다. 이곳에서 자전거를 타고가다 보면 재미있게도 한국의 길상사(吉祥寺)와 같은 이름의 사이판불교 사찰 길상사를 만나게 된다. 강제노역으로 끌려가 희생된 조선인들의 혼을 달래기 위해 한국의 한 스님이 지은 사찰이다. 이곳에는 불꽃 나무가 끝 간데없이 길게 늘어서 이국적 풍경을 보여준다. 길의 고저 차이가 크지 않아 바이크를 타기에 적절해 보였다. 5㎞가량 페달을 굴리다 보면 머스탱 컨버터블을 타고 둘러본 해안가의 만세 절벽(Banzai Cliff)에 다다른다.
<시원한 배경의 사이클링 코스>
<강인한 체력이 요구되는 자살절벽 코스>
해안가 풍경을 충분히 만끽했다면 이제는 만세 절벽을 산 위에서 전망할 수 있는 산길 도로 ‘루트320’을 타보는 것도 좋다 약간 숙련된 바이커라면 자살절벽(Suicide Cliff) 조망대까지 업힐로 갈 수 있는 코스다. 2.5㎞가량 되는 이 길은 숨이 깔딱거리는 속칭 ‘깔딱고개’가 서너 곳 있어 강인한 체력이 요구된다. 업힐에 자신이 없다면 자살절벽 위 전망대까지 자전거를 싣고 간 뒤 다운힐로 내려오는 방법도 있다. 이곳에서는 저 멀리 해변의 아름다운 풍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므로 라이딩이 더없이 상쾌하다. 풍경에 취해 나도 모르게 환호성을 질렀다. 자살절벽위 전망대에 도달하고 나면 파노라마라는 단어는 바로 이곳에서 쓰이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까지 완벽한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사이클로 찾은 새섬>
<만세절벽 위의 일본이 세운 충혼비/ 가라판의 자전거점>
귀국용 코로나 검사 '무료'
귀국을 하루 앞두고 투어 가이드가 급히 서둘러 진료소로 가자고 한다. 그는 많이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검사소를 알고 있었다. 노련한 가이드가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관광객들이 주로 찾는 켄싱턴호텔에서 검사를 기다리면 자칫하면 오전 반나절이 날아가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조금 기다렸더니 한국과 마찬가지로 드라이브 스루 방식으로 PCR(유전자증폭) 검사를 한다. 한국과는 다르게 약간 덜 아프게 찌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다행히 코로나 검사는 북마리아나 연방정부가 무료로 제공하는 것이어서 여행 경비를 아낄 수 있다. 유럽 등 다른 나라는 코로나 검사비만 인당 최소 10만 원 안팎인 곳도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무척 감사한 일이다. 다행히 음성 통보를 받고 이틀 후 무사히 귀국길에 오를 수 있었다.
<만세절벽으로 향하는 사이클링 코스>
----------------------------------------------------------------------------------------------------------------------------
출처 : 연합이매진